음반 제목이 ‘뉴 디렉션’이다. 조용필의 파격(2013년 ‘헬로’)을 택하진 않았다. 새로운 방향은 아련하지만 분명히 제시된다. 가수 이문세(56)가 무려 13년 만에 낸 15집 음반(7일 발매) 이야기다.
이문세의 복귀는 두 가지 면에서 기대와 우려를 함께 모았다. 첫째는 고 이영훈(1960~2008)의 부재. ‘난 아직 모르잖아요’ ‘휘파람’ ‘소녀’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이야기’ ‘가을이 오면’ ‘깊은 밤을 날아서’ ‘그녀의 웃음소리뿐’ ‘광화문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옛사랑’…. 이문세의 거의 모든 대표곡을 작사·작곡한 이가 없다. 둘째는 이문세 본인의 두 차례(2007, 2014년) 갑상샘암 수술이다. 수술 후 경과가 좋다 해도 목에 후유증을 곧잘 남기는 질병이다.
신작을 들어봤다. 이문세의 음색은 그대로 탄탄하다. 그 대신 ‘파랑새’(1984년)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1989년)의 통나무 패듯 토하던 남성적 가창은 없다. 이문세의 목소리는 붓 자국 뚜렷한 유채물감을 버리고 수채화를 택한 듯 악곡 위를 투명하게 누빈다. ‘새로운 방향’은 여기서부터 읽힌다.
‘그녀가 온다’(작사 이문세 작곡 노영심)에서 이문세의 노래는 힘 빼고 멜로디를 사뿐, 탄다. 듀엣 파트너 규현(슈퍼주니어)의 가창에 힘을 더 실어줬다. 동형(同形)반복형 멜로디의 후렴구(‘그녀가 온다/향기가 온다/사랑인가보다’)는 요즘 노래처럼 경쾌하고 호흡이 짧다. 이문세는 “곡에 힘 같은 게 떨어지는 것 같아 높은 음색의 여가수나 남자가수를 섭외했으면 했고, 지난해 ‘광화문에서’를 부른 규현이 떠올랐다”고 했다.
광고 로드중
이문세의 수채물감 같은 음성 덕일까. 앨범 후반부에 연속되는 느리고 관조적인 곡들이 더 빛난다. 송영주 트리오가 편곡과 연주에 힘을 보탠 ‘무대’(작사 이문세 작곡 조규찬)는 음반의 한 꼭짓점이다. ‘고엽’을 떠오르게 하는 재즈풍의 단조 곡. ‘사랑 가고/나는 남고/계절(어둠)은 이렇게 오고’ 하는 쓸쓸한 반복 구에서 이문세의 보컬은 브러시(빗 모양으로 북을 쓸어 소리를 내는 드럼 채) 음색과 맞물려 세월의 옷자락을 천천히 끈다. 플루트, 기타, 피아노, 현악이 돋보이는 느린 곡 ‘집으로’(작사 정미선 작곡 유해인), ‘사랑 그렇게 보내네’(작사 정미선 차은주 작곡 조영화)가 풍기는 관조와 향수의 정서도 만만찮다. 수채화가로 변신한 이문세가 마주한 새로운 삼각대는 탄탄하다. 옛 히트 곡에 필적할 강력한 한 방이 부족한 것은 아쉽다.
이문세는 앨범 제작을 위해 서울 청담동에 쉼터가 구비된 개인 작업실을 마련했다. 여기서 신작의 모든 가창 녹음을 했다. 건강 상태를 고려해 컨디션 좋을 때를 골라 녹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는 “이문세스러운 노래라고 하면 ‘옛사랑’에서 시 읊듯 툭툭 던지는 가창 아니면 ‘그녀의 웃음소리뿐’의 내지르는 창법이었는데, 이번엔 예쁘고 섬세하게 불렀다. 음악의 흐름에 맞추려 애썼다”고 했다. “과거의 영광스러운 것들 다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봤어요. 여러분의 솔직한 평가를 받겠습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