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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투자 전성시대 “수익 난다면 투자대상 안 가린다”

입력 | 2015-04-05 17:29:00


“SK E&S가 발전소를 판다고요?”

지난해 6월 편충현 하나대투증권 구조화금융실장은 기업 관계자들과의 모임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들었다. SK그룹 계열 에너지회사인 SK E&S가 경기 평택시, 경북 김천시 등에서 운영하던 천연가스 및 열병합발전소 3곳을 매각한다는 소식이었다.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하던 증권사에게 발전소는 매력적인 투자대상이었다. 편 실장은 “발전소는 경기에 덜 민감하고 해당 지역에 독점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발전소 운영으로 연 6~7%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나대투증권이 곧바로 발전소 인수를 위한 펀드를 조성하자 연기금을 비롯해 보험사, 은행들까지 큰 관심을 보이며 투자자로 참여했다. 이 펀드는 올해 1월 중순 1조1300억 원에 3개 발전소를 인수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진행된 에너지 분야의 인수합병(M&A) 거래로 가장 큰 규모였다.

○“수익이 난다면 투자대상 가리지 않는다”

금융회사, 연기금 등 국내 ‘큰손’ 투자가들이 앞 다퉈 대체투자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대체투자는 주식, 채권 등 전통적 투자상품 대신 부동산, 원자재, 선박 등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얼마 전까지 대체투자라면 주로 빌딩 등 부동산 투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투자 대상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창섭 신한금융투자 투자금융부 팀장은 “이전까지 금융투자업계는 사회간접자본(SOC), 자원개발, 선박 부문에서 대체투자처를 찾았는데 지난해부터는 항공기, 에너지, 환경 인프라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KDB대우증권은 지난달 두바이 국영항공사인 에미레이트항공의 항공기 ‘B777-300ER’를 7200만 달러(약 799억 원)에 사들였다. 이 항공기를 에미레이트항공에 다시 임대하는 방식(세일 앤드 리스백)으로 수익을 올린다. 대우증권은 지난해에도 같은 방식으로 핀란드의 국적항공사인 핀에어의 항공기를 매입했다.

비행기에 투자하는 항공기금융은 해외에서는 보편화된 투자방식이지만 한국에서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조정익 대우증권 AI솔루션팀장은 “저성장, 저금리가 고착화한 상황에서 연 10% 이상 수익이 기대돼 은행 등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다수 항공기 투자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는 최근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인 LA 다저스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카타르투자청이 프랑스 프로축구팀 파리생제르맹(PSG)을 인수하는 등 해외에서는 기관투자가의 스포츠구단 인수가 간혹 있는 일이지만 국내 기관투자가가 해외 스포츠구단 투자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 대체투자 수익률 15% 웃돌아”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대체투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부문에서도 최근 기관들의 투자 전략이 바뀌는 추세다. 그동안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랜드마크’ 오피스빌딩이나 대형 쇼핑몰 등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아시아, 남미 등 신흥국 부동산으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선진국 대도시의 상업용부동산 수익률이 최근 연 3~4%대로 떨어진 데 비해 신흥국에서는 연 7%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럽 등 선진국 부동산 투자에 집중했던 국민연금은 지난해 폴란드의 방송통신시설을 1억9000만 유로(약 2261억 원)에 인수했고, 독일 국경과 인접한 폴란드 브로츠와프시와 슈체친 시에 있는 쇼핑몰 2개를 4억 유로에 사들였다. 올해는 핀란드 연기금과 손잡고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쇼핑몰을 약 5000억 원에 인수했다.

호텔에 투자하는 큰손도 늘고 있다. 호주 시드니의 포시즌스 호텔을 사들여 연 7%의 수익을 내고 있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최근 미국 하와이의 페어몬트 오키드 하와이 호텔을 2억20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KIC는 삼성증권과 손잡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짓고 있는 비즈니스호텔 ‘신라스테이 서대문’을 사들인다.

자산이 크게 늘고 있는 연기금들도 올해 대체투자 비중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전체 자산에서 대체투자 비중이 9.9%였지만 올해 말까지 11.5%로 늘리기로 했다. KIC도 15% 수준인 대체투자 비중을 5년 내 20%까지 높일 계획이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