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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新명인열전]30년간 701번째 헌혈… “가장 쉬운 봉사였어요”

입력 | 2015-03-23 03:00:00

<9> 국내 최다 헌혈왕 손홍식씨




손홍식 씨는 지난달 23일 광주 헌혈의 집 전남대 용봉센터에서 700번째 헌혈을 했다. 이는 1958년 국내 헌혈 사업 시작 이후 처음 수립된 기록이다.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 제공

‘헌혈왕’ 손홍식 씨가 20일 전남대 캠퍼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다. 손 씨는 "생명을 나누는 헌혈을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건강도 지킬 수 있었다”며 "헌혈은 이웃과 나를 위한 저축"이라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한국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인터넷(www.bloodinfo.net) ‘명예의 전당’을 클릭하면 100번 이상 헌혈한 사람들의 명단이 있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명단 맨 앞쪽에 자리한 손홍식 씨(65·광주 북구 용봉동)다. 그는 지금까지 701차례 세상과 피를 나눈 국내 최다 헌혈 기록 보유자다. 그 뒤를 서울에 사는 임희택 씨(646회)가 잇고 있다. 명예의 전당에는 20일 현재 7978명이 등록돼 있다. 손 씨는 지난달 23일 700번째 헌혈 기록을 세운 뒤 2주 후인 9일 헌혈의 집을 다시 찾았다.

손 씨의 701번째 헌혈 소식을 접한 명예의 전당 회원들은 “꾸준한 건강관리로 새로운 역사를 부탁드립니다” “저도 200번째를 향해 달려 가겠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이렇듯 손 씨는 생명 나눔을 실천하는 전도사로 30년 넘게 사회에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다.

○ 2주에 한 번 생명 나누는 헌혈왕


손 씨는 생애 처음 헌혈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1984년 5월 29일. 처음에는 주삿바늘이 무서웠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삶이 더 부끄러웠다. 그는 출퇴근길에 봤던 헌혈 차에 스스로 올랐다. “내가 아플 때 누군가가 나를 도울 수도 있을 텐데, 그러려면 내가 미리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전부였어요.” 그런데 그게 하면 할수록 기쁨이 새록새록 솟더라고 했다. 지금까지 그가 이웃과 나눈 피의 양은 33만 cc. 성인 남자 1인 평균 혈액량이 4800cc이니 70명의 몸속에 있는 혈액량과 맞먹는다.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헌혈은 혈액 성분 전체를 한번에 뽑는 ‘전혈(全血)’을 말한다. 전혈은 수혈자의 회복 기간을 고려해 두 달에 한 번으로 제한된다. 군대 갔다 온 남자라면 기억할 ‘초코파이 헌혈’이 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분 헌혈. 몸에서 뽑은 혈액을 특정 장치를 통해 혈소판이나 혈장을 분리한 뒤 적혈구 등 나머지 성분을 혈관에 돌려보내는 방식이다. 이런 헌혈은 전혈보다 회복이 빨라 2주일만 지나면 또 할 수 있다.

“1994년까지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성분 헌혈이 없었습니다. 두 달에 한 번 하다 보니 종종 까먹게 돼 그때까지는 횟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손 씨는 2주에 한 번씩 하는 성분헌혈을 해외여행이나 각종 연수 때를 제외하고는 빼먹지 않았다고 한다.

헌혈을 하면서 건강까지 덤으로 챙겼다. 피를 뽑으면서 간 기능이나 백혈구 수치 등을 체크하기 때문에 건강 이상 여부를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몸의 혈액 중에 10%는 사용되지 않고 항상 대기 상태여서 헌혈을 해도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탁한 실내 공기를 바꾸려면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그는 “새로운 피가 만들어지면서 신체의 기(氣)가 순환된다”며 “헌혈할 때마다 목욕이나 이발을 하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부인(63)은 남편의 잦은 헌혈을 걱정하면서도 말리지는 않았다. 2남 1녀 자녀들도 언제부턴가 아버지를 따라 헌혈을 시작했다.

○ 헌혈은 건강한 사람의 특권

그는 피만 나눈 게 아니다. 1994년에 신부전증 환자에게 왼쪽 신장을 기증하고 2002년에는 간 일부를 떼어내 생면부지의 환자에게 주었다. “1990년 새생명나눔회에 가입하고 자원봉사차 대학병원 혈액투석실에 갔는데 핏기 없는 얼굴에 팔뚝은 째고 꿰맨 흔적들로 더는 주삿바늘을 꽂기도 힘든 환자들을 보면서 신장 기증을 결심했죠.”

그가 한쪽 신장을 떼어낸다고 했을 때 아내는 한사코 말렸다 “당시는 신장 기증이 그리 흔치 않았거든요. 아이들도 어렸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며 ‘당신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했고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손 씨는 “그 뒤 아내와 함께 혈액투석실을 찾았는데 그때서야 이해해 주더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8년 뒤 손 씨는 자신의 간 절반을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내놓았다. 그때는 의외로 아내의 반대가 심하지 않았다. 그는 “반대해 봤자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며 웃었다. 간을 이식받은 50대 여성은 지금도 건강하게 잘 지내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는 골수 기증도 신청했지만 자신의 골수와 맞는 사람이 없어 기증하지는 못했다.

그는 수년째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고 주말이면 고향인 전남 보성에 내려가 벼농사를 지을 정도로 부지런하다. 시내에서는 버스나 택시를 타 본 적이 없다.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틈틈이 공부해 공인중개사, 노인심리상담사, 요양보호사, 카운슬링상담사 자격증도 땄다. 2005년 전남통계사무소 보성출장소장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친 그의 목표는 만 70세가 되기 전날까지 2주에 한 번씩 헌혈하는 것이다. 혈소판 헌혈은 규정상 만 60세로 끝났지만 전혈, 혈장 헌혈은 앞으로 5년 정도 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추세라면 800번 헌혈도 가능하다.

“헌혈은 건강한 사람의 특별한 권리입니다.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은 피를 나누고 싶어도 할 수가 없잖아요. 헌혈이야말로 건강한 몸으로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봉사인 셈이죠.”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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