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열린 ‘설악무산 그리고 영혼의 울림’ 중 오현 스님(오른쪽)과 권영민 버클리대 초빙교수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날 오현 스님은 “우리는 콜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하기 전부터 풍류를 즐긴 민족”이라며 황진이의 시조 여러 편을 멋들어지게 낭송해 큰 박수를 받았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한국학센터 제공
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규모가 큰 사찰의 최고 어른) 오현 스님(83)의 일갈이다. 그런데 장소는 국내 사찰의 선방이 아닌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다.
20일(현지 시간) 이 대학 한국학센터에서 스님을 초청한 가운데 ‘설악무산 그리고 영혼의 울림’ 행사가 열렸다. 필명인 오현 스님으로 더 유명한 스님의 공식 법명은 무산이다. ‘선(禪) 시조’의 대가인 스님은 2007년 시집 ‘아득한 성자’로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현 스님은 참선법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해가 뜨면 일어나 밥 먹고, 웃을 일 있으면 웃고, 아첨할 일 있어 아첨하다 보면 하루가 후다닥 간다”며 “별거 없다. 하루 일과가 다 참선이고 따로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시 권 교수가 “말이 어렵다. 그래서 선이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오현 스님은 장난치듯 권 교수를 때리는 시늉을 하더니 “참 딱하다. 내빈들은 다 알아들었는데 교수님만 자꾸 어렵게 듣는다”라고 하자 객석에선 박장대소가 터졌다. 스님의 말이 이어졌다. “학자들이 선을 말과 글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을 따라가면 다 죽습니다, 죽어요. 선을 이야기하면 철사로 자기를 꽁꽁 결박하는 것과 같아요. 토끼는 뿔이 없고 거북이는 털이 없는데 토끼의 뿔, 거북이의 털 이야기를 내가 이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소.”
오현 스님은 지혜를 들려 달라는 대담자의 요청에 “입은 열지 않으면 본전이고 열면 손해”라며 여러 번 천진한 웃음을 짓고서야 입을 열었다. “인류에는 절대존자가 없어요. 부처님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다 죽었어요. 내가 없으면 세상에 극락도 지옥도, 아무 것도 없어요. 내가 절대존자임을 먼저 자각하면 모든 사람들 한 분 한 분이 다 절대존자임을 알고 받들게 됩니다.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의 깨달음입니다.”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평화를 위한 화두도 나왔다. 오현 스님은 “핵은 인류 재앙의 근원이니 지금 폐기하지 않으면 인류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미국은 기독교 정신으로 나라를 세웠으니 핵과 살상 무기를 만드는 막대한 돈으로 복음 사업에 사용하라”고 했다.
하스 교수는 “오현 스님은 물에 비친 달을 바라볼 순 있어도 퍼 올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퍼 올려 가지고 갈 수 있는 귀중한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재미교포 학생 애슐리 김 씨(21)는 “시조를 구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스님 강연을 듣고 나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재치 있게 풀어 내는 게 미국의 힙합보다 낫다”고 했다.
버클리(캘리포니아)=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