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한국인/구본진 지음/436쪽·1만8000원·김영사
금관총 환두대도, 포항 중성리 신라비, 중국 랴오닝 성 홍산문화의 유물인 흑피옥기와 여신상(왼쪽부터). 환두대도에 적힌 ‘이사지왕’이란 글씨와 중성리 신라비의 글씨는 모두 삐뚤빼뚤하다. 또 용 태양신 매미가 섞인 흑피옥기와 여신상에 적힌 글자들은 해독은 안 됐지만 자유분방한 모양이어서 고대 한민족의 글자와 유사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김영사 제공
칼집 끝 금속 부분에 휘갈겨 새겨진 네 글자를 처음 본 순간 솔직히 ‘애들 장난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전체적으로 글씨체가 삐뚤빼뚤하고 뭐 하나 균형 잡힌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위)과 백범 김구가 쓴 글씨체는 전체적으로 유사한 필적으로 용기 있고 천진한 성품을 반영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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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차이를 고조선부터 신라 법흥왕 이전까지 유지된 한민족 고유의 문화적 DNA인 ‘네오테니(neoteny·어린이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한다. 네오테니란 성장해서도 어린시절의 특성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으로 자유분방하고 활력이 넘치며 호기심과 장난기가 가득한 기질 등으로 정의된다. 예컨대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끈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이런 네오테니의 문화적 속성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미국 인류학자 리처드 퓨얼은 “지구상에서 동아시아 사람들이 가장 네오테닉하고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이 가장 네오테닉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조선부터 내려온 한민족의 독특한 문화 속성은 중국식 연호와 이름, 복장, 율령의 사용 등 급격한 중국화를 추진한 신라 법흥왕 때부터 일정 부분 맥이 끊겼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특히 중국 고전을 읊는 것이 필수가 된 고려시대부터는 글씨체가 중국을 따라 경직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밖에 백범 김구의 서체와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의 글씨체가 유사하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두 글씨체 모두 전체적으로 정사각형을 이루면서 글씨에 힘이 넘치고 필선이 부드러우며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것. 필적학 이론으로 보면 용기가 있고 꾸밈이 없는 천진한 성품을 반영한 글씨라는 분석이다.
이 책은 이른바 ‘필적 고고학’을 개척하겠다는 포부가 담긴 흥미로운 책이다. 미국필적학회(AHAF)와 영국필적학자협회(BIG) 회원이기도 한 저자는 21년간 검사로 일하면서 사람의 내면과 글씨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왔다.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서체를 비교 분석한 ‘필적은 말한다: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2009년)을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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