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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파견 北 근로자 “18시간 일하고 임금 90% 국가에 빼앗겨”

입력 | 2015-03-10 15:31:00


“돈을 주지 않고 종이에다 수표(서명)만 해요. 집에 갈 때 주겠다. 근데 안 줘요. 일은 너무나도 힘들게 하고 돈은 주지도 않지.” (탈북자 A 씨, 30대 초반, 2007년 쿠웨이트에 2년간 파견돼 도시건설근로자로 노동)

“우리가 버는 것의 10분의 1밖에 못 받으니까 허무하죠. 90%는 국가에 들어가는 거고. 한 3개월 지나니까 국가가 어려워서 지원해야 한다며 얼마큼씩 또 떼서 내자고 하고….” (탈북자 B 씨, 30대 초반, 미상 시기에 동유럽 국가로 파견돼 3년간 용접공으로 노동)

“노동자 한 사람이 100m 높이에서 떨어져 죽어 쿠웨이트에서 배상금이 나왔습니다. 5만, 10만 쿠웨이트디나르(약 1억8800만~3억7600만 원)인가. 본인 집에 간 거는 약 224만 원인가 갔다는 겁니다. 야, 사람이 더럽게도 살지, 죽은 사람한테 나온 거를 떼먹나.” (탈북자 C 씨, 30대 초반, 2010년에 쿠웨트에 2년간 파견돼 건설근로자로 노동)

10일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극심한 외화난을 겪고 있는 북한은 전 세계 16개국에 5만~6만 명의 근로자를 파견해 매년 12억~23억 달러(약 1조3400억~2조5800억 원)를 벌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 당국은 앞으로도 수만 명의 인력을 송출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세계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들은 하루 최대 18시간 일하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최대 90%를 북한 당국에 뺏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당국이 사망한 북한 근로자의 사망 위로금까지 가로챘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이날 이런 내용이 담긴 북한 해외 노동자 현황과 인권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외에 파견된 경험(러시아 중국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리비아)이 있는 탈북자와 파견 업무를 담당했던 탈북자 등 모두 20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했다. 증언자들의 파견 시기는 1970년~2012년으로 다양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근로자가 파견된 국가의 현지 회사가 지급하는 임금의 70%를 근로자를 관리하는 현지 북한 대표부가 가로챈다. 근로자들은 나머지를 현지 화폐로 받지만 임금의 10~20%를 당 자금, 충성 혁명자금 등으로 북한 당국에 내야한다. 숙박료, 식비를 지급하고 나면 자신이 번 임금의 10% 정도만 손에 쥘 수 있다는 것. 보고서는 북한 근로자들이 실제 받는 돈은 “평균 월 100달러(약 11만 원)”라고 했다. 하지만 “국가안전보위부의 감시와 통제를 받기 때문에 그 돈도 현지에서 사용하는 것을 제한당한다”고 덧붙였다. 파견 근로자들의 고된 노동의 대가는 김정일 통치자금의 원천일 뿐이라는 것이다.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는 보통 3년간 일하며 기술자와 관리들은 5년간 파견된다고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하루 10~12시간 일하고 4~6시간의 초과근무를 했다. 초과근무를 해도 추가 임금은 받지도 못한다.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한국 기업들에게 꼬박꼬박 북한 근로자들의 가급금(시간외수당)을 요구하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들은 월 1회이거나 휴일이 있지만 휴일이 아예 없다는 증언도 나왔다. 2002년 러시아에 파견됐던 탈북자 D 씨는 “노동강도가 매우 세다. 연간 휴무는 1월 1일 단 하루”라고 말했다.

비인간적인 대우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북한 근로자의 해외 파견 담당 업무를 한 탈북자 E 씨는 “일하다가 죽은 사람이 많다. 국가가 보상해준 건 아무것도 없다. 철판으로 용접을 해 사람 시체 넣고 물이 새지 않게 하고 기차로 나온다”고 말했다. 옷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쓰레기장에서 버려진 옷을 주워 입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1995년 러시아에 파견됐던 탈북자 F 씨는 “20세기 원시인을 보려면 러시아 아무르 주 북한 노동자 숙소에 들어오라고 하는 게 거짓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외에 파견되는 북한 근로자들은 누구이기에 이토록 열악한 노동 환경에 내몰리는 걸까.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경제적 이유로 해외 파견을 자원한다. 북한당국은 탈출을 막기 위해 정치적 성분 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5, 6차례 서류를 검토하고 약 4차례 면접 등 6단계를 거쳐 선발한다”고 했다.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끝에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으로 도착한 타국에서 그들을 기다린 건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인간적 대우였던 셈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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