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황칠 ‘숙련기술전수자 1호’ 정병석씨
사철 잎이 푸른 상록수인 황칠나무는 따뜻한 전남 해안과 제주에서 자란다. 정병석 씨는 인공조림으로 황칠나무 북방한계선이 전남 화순이나 광주까지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정병석 황칠연구소 제공
황칠 관련 특허를 6개 보유한 정병석 씨가 지난달 27일 조선대 창업보육센터 내 연구소에서 황칠을 칠한 부채를 선보이고 있다. 황칠부채를 흔들면 연한 솔향기 같은 미향이 풍겨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 교육자에서 황칠나무 전문가로
정 씨는 36년간 교직에 몸담았고 광주시교육청 교육국장을 지낸 교육자 출신이다. 그가 황칠나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 광주과학고 교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장에게서 전국과학전람회에 논문을 출품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전남대 생물학과 출신인 그는 당시 생물학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정 씨는 끊어진 황칠나무 맥을 복원하기 위해 연구에 착수했다. 황칠나무가 있는 전남대 보길도 수목원 일대에는 가정집 화단에도 황칠나무가 한두 그루씩 심어져 있었다. 주민들은 아플 때 황칠나무를 달여 먹으면 몸이 낫는다며 비상약으로 키웠다.
현장조사를 통해 사철 잎이 푸른 황칠나무가 전남 해안과 제주에서만 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물이 잘 빠지는 기름진 토양과 경사지에서 잘 자라는 것도 밝혀냈다. 황칠나무는 상처가 나면 스스로 치유·보호를 위해 면역력과 살균력을 높이는 액체인 황칠을 분비한다. 사람 가슴 높이 부근 둘레가 20cm 정도 되는 나무에서 10∼50g의 황칠이 나온다. 귀한 황칠은 kg당 1000만∼3000만 원을 호가해 황금에 비유되기도 한다.
정 씨는 2년간 황칠 성분을 분석해 효능을 입증했다. 황칠은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안식향(安息香)이 있고 1000년을 넘게 가는 천연 투명 도료이기도 했다. 황칠은 흰 종이에 칠하면 황금색을 띠지만 나무에 칠하면 황토와 비슷한 색을 낸다. 당 태종의 갑옷은 금이나 황동에 황칠을 칠해 황금빛을 띠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1992년 10월 ‘전통 도료 황칠 재현을 위한 황칠나무의 특성 및 이용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전국과학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정 씨가 상을 받자 완도 주민들이 황칠나무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고 묘목 생산법을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정 씨에게 묘목 생산법을 배운 주민들은 대량으로 황칠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맥이 끊어진 천년의 신비 황칠나무의 매력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각계의 다양한 연구가 촉발됐다.
○ 건강기능식품으로도 각광
정 씨는 2000년부터 황칠나무의 약효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황칠나무의 학명 ‘덴드로파낙스 모비페라(Dendropanax morbifera)’를 풀이해 보면 덴드로는 ‘식물’, 파낙스는 ‘만병통치약’, 모비페라는 ‘병을 가져간다’는 뜻이다. 학명으로 본 황칠나무는 ‘만병통치 약용 식물’이라는 의미다. 그동안 다양한 연구를 통해 황칠나무가 항암 작용, 면역력 증강, 간 질환·당뇨 치료, 가래·기침을 줄이는 진해거담 효과, 신경 안정 등의 효능이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정 씨는 “황칠나무의 가장 큰 효능은 항암과 면역력 증강”이라고 말했다.
그는 황칠나무 약효를 살린 차와 음료를 개발했다. 일부에서 황칠나무 껍질을 삶아 건강식품으로 팔고 있지만 약효 성분이 10∼20%밖에 함유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보길도와 화순에서 황칠나무 농장을 운영하면서 황칠연구소를 열고 황칠나무를 보급하는 한편 건강식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수목 생산과 식품 가공·판매, 관광산업을 하나로 만드는 6차 산업 자원화가 꿈이다. 또 황칠나무 숲이 안식향을 내뿜고 면역력을 높여 주기 때문에 편백나무 숲 못지않은 치유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렇게 설명했다.
“황칠나무가 농수산물 수입 개방 확대의 파도를 이겨 낼 토종 자원이에요. 세계적으로 약효를 인정받을 날이 곧 옵니다. 황칠나무를 세계적으로 귀한 우리 자원으로 잘 가꿔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