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내 면세점 시장에선 업계 관계자들마저 놀라게 한 이변이 발생했다. LG생활건강의 한방화장품브랜드 ‘더히스토리오브 후(이하 후)’가 10월 롯데면세점 전국 7개 점포에서 매출 1위 브랜드로 깜짝 등극한 것이다. 국내 면세 시장에서 만년 1등으로 군림해온 루이뷔통, 카르티에, 샤넬 등 수입 럭셔리 브랜드를 제치고 일궈낸 값진 성과였다.
LG생활건강에 따르면 후는 롯데뿐 아니라 신라, 워커힐, 동화면세점 등의 주요 점포에서도 지난해 하반기(7~12월) 이후 잇따라 면세점 화장품 매출 1위에 올라섰다. 이런 선전에 힘입어 후의 지난해 매출은 4300억 원으로 2013년(2040억 원) 대비 110% 상승했다.
후가 출범 초기(2003년 1월)부터 바로 눈에 띄는 성과를 냈던 것은 아니었다. 고가(高價)전략을 내건 이 브랜드는 당시 방문판매 시장의 선두 주자였던 아모레퍼시픽 ‘설화수’와 수입 화장품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후의 담당자들은 심각하게 차별화 전략을 고민했다. 그리고 2005년, 마침 LG생활건강에 부임한 차석용 부회장(당시 사장)이 던진 한 마디로 ‘발상의 전환’이 시작됐다. “한방 브랜드(콘셉트로 승부 걸려하지) 말고, ‘궁중 브랜드’(로 차별화) 하라”는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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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나 중국 관광객 증가는 모든 국내 브랜드에 호재였다. 이 가운데 후가 유독 큰 성과를 낸 비결은.
“고가 제품의 라인업이 풍부한 점, 그리고 고객의 니즈를 귀 기울여 들은 점이 도움이 됐다. 165만 원짜리 ‘환유’ 세트는 이전에는 3가지 개별 제품이 각각 제법 부피가 큰 박스에 담겨 판매됐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셋 다 사고 싶은데 여행 가방에 넣기엔 너무 크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어 발빠르게 3가지를 합친 세트 제품을 구성했다.”
-럭셔리 마케팅의 본질을 생각할 때 이처럼 신속한 기획력은 오히려 고급 이미지를 희석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신속하게 소비자의 피드백을 반영한 것은 ‘한류’라는 콘텐츠의 힘이 아닐까. 대신 패키지 디자인을 매번 더 고급스럽게 바꾸고 1인당 판매 수량 제한 등을 실시해 ‘동경의 가치(aspiration value)’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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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성형 트렌드에 맞춰 내놓은 ‘재연고’는 성형외과에서 시술을 받은 뒤 바르도록 고안된 제품이었다. 제품명이며 패키지는 최대한 ‘후 답게’ 만들었는데 반응은 별로였다. 반면 매년 연말, 패키지를 달리한 뒤 스토리를 담아 내놓는 ‘궁중팩트’는 5년째 품절 행진을 이어갈 정도로 인기다. 럭셔리 브랜드라면 반짝 트렌드에 편승하기보다 브랜드 스토리에 충실한 ‘영혼(스토리텔링)’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얼마 전 차석용 부회장이 임원 회의에서 후의 핵심 성공 요인은 ‘재구매를 부르는 품질’이라고 말했다고 들었다.
“얼굴 피부가 눈에 가장 잘 띄는 부위이다 보니 고가 제품일수록 품질에 집중해야 한다. 옷은 취향에 따라 불편하기를 감수하고서라도 사는 제품이라면 화장품은 불편하면 절대로 사지 않는 제품이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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