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뉴스룸/정세진]반전 ’빅 히어로’

입력 | 2015-03-04 03:00:00


정세진 산업부 기자

지난 설 연휴 때 친척들과 미국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를 봤다.

도박게임인 ‘로봇배틀’을 즐기는 말썽꾸러기 히로는 형 테디의 도움으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로봇을 개발해 악당을 무찌른다. 어찌 보면 흔하디 흔한 미국식 슈퍼히어로 만화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 애니메이션은 영웅 스토리가 아닌 창업 스토리로 보였다.

주인공 히로는 문제아지만 어른들은 그에게 무턱대고 공부해 대학에 가라고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공학도인 형 테드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로봇개발 연구실을 보여주고 비슷한 관심을 갖고 있는 동료도 소개해준다. 로봇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가겠다고 결심한 주인공은 집 차고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로봇전시회에 참석한다. 그가 만들어 낸 작품에 감명한 유명한 로봇공학 교수는 어린 그에게 과감하게 대학 입학을 제안한다. 벤처사업가는 주인공에게 “막대한 돈을 줄 테니 기술을 팔라”는 유혹도 한다.

물론 이런 식의 내용은 원작 만화인 일본의 ‘빅 히어로6’와는 사뭇 다르다. 당초 원작은 전형적인 영웅 스토리다. 하지만 디즈니는 이를 미국식으로 각색했다. 하지만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미국의 전설적인 창업자들이 겪었을 만한 이야기를 만화적 상상력으로 바꾼 것뿐이다.

함께 본 가족들과 한국에서도 어린 아이가 자신의 관심 분야에 몰입해 성공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해봤다. 회의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다. 마침 친척 중 초등교사로 일하는 한 분이 3월부터 맡게 될 6학년 실과 과목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말도 했다. 잘만 활용하면 아이들이 관심 있는 분야를 직접 실습해 볼 기회지만 대부분의 아이가 도통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의 기억에도 학창 시절의 실과 수업은 자습을 하거나 떠드는 시간이었다. 자유롭게 다양한 실습을 할 수 있던 이 시간에 창의적인 일을 시도해 본 기억도 없다. 지금의 아이들도 필자의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초등교사 친척의 설명이다.

한국을 거대한 창업국가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창조경제 비전이 실현되려면 결국 주인공 히로와 같은 성공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 정부도 이를 위해 만화에 등장한 차고와 같은 창업카페도 만들고 멘토와 벤처투자자도 적극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찾기보다는 초등교사와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꿈꾸고 부모들은 안도한다. 게임에 빠진 아이에게 일류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길을 보여주기보다는 게임을 못하게 하는 방법만을 찾는 게 대다수 한국의 어른들이다.

이런 교육시스템과 문화 속에서 로봇 괴짜를 알아보고 기회를 주고 이들이 창업하는 만화 같은 스토리는 나오기 힘들다. 빅 히어로의 주인공 히로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일찌감치 부모 손에 이끌려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했을 것이란 뼈 있는 농담에 모두 공감했다. 빅 히어로의 ‘반전 스토리’인 셈이다.
 
정세진 산업부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