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연차 보고서’ 분석해보니
3일 전국은행연합회, 여신금융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에 따르면 금융회사들은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지배구조 연차보고서’를 관련 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인 118개 금융회사에 대해 사외이사의 활동 내용과 연봉을 주주총회 20일 전까지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금융회사들이 사외이사들에 대한 처우 등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고액 연봉에 거마비까지
17개 회사 중 사외이사의 급여가 가장 높은 곳은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 삼성그룹 계열 금융회사였다. 삼성그룹 계열 금융회사들은 사외이사들에게 공히 7800만 원의 연봉을 지급했다. 삼성화재의 경우 지난해 이사회가 총 7회 열렸던 것을 감안하면 한 번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1114만 원의 급여를 받은 셈이다.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는 각각 12차례 이사회를 열었다.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연차보고서를 공시한 신한은행은 총 6명의 사외이사에게 지난해 4560만∼5300만 원의 연봉을 지급했다. 4700만 원의 연봉을 받은 한 사외이사는 3600만 원의 기본급에 이사회에 한 번 참석할 때마다 50만 원씩의 거마비를 추가로 받는 등 1100만 원의 기타수당을 받았다. 이 사외이사가 지난해 신한은행 이사회에서 일한 시간은 총 175시간으로 시간당 27만 원을 벌어간 셈이다.
나머지 금융회사들도 사외이사들에게 4000만∼5000만 원의 연봉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손해보험은 4800만 원을, 한화생명보험은 5200만 원을 지급했다.
○ 본인과 배우자에게 건강검진 혜택
코리안리는 사외이사들에게 본인 120만 원, 배우자 120만 원의 건강검진 비용을 지원했다. 삼성화재처럼 사외이사들이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본사 건물에 ‘사외이사실’을 운용한 곳도 있었다.
사외이사가 소속된 비영리법인에 한 번에 수천만 원씩 기부한 사례도 있다. 우리은행은 아직 연차보고서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공시한 ‘월간 이사회 활동내역’에서 한 사외이사가 포함된 한국경제학회에 2012년부터 매년 2000만 원씩 기부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과거부터 은행 차원에서 학회나 학교 등에 기부해왔다”며 “사외이사 때문에 기부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사외이사 거수기 역할 벗어나야”
그동안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회사 사외이사들이 최고의사결정기구의 일원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한 금융회사의 경우 4명의 사외이사는 지난해 12월 열린 이사회에서 6개 안건에 대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전문가들은 금융회사 사외이사들이 고액 연봉 등의 대우에 걸맞게 거수기 역할에 머물지 말고 금융회사의 경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활동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이사회에 잘 참석하지 않거나 거수기 역할만 하며 높은 연봉을 받는 사외이사가 많은 만큼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사외이사들의 연봉 공개는 바람직하다”며 “이를 계기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가 실질적으로 개선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연상 baek@donga.com·송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