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실태 파악 위해 고위급 인사와 접촉… 남아공 기밀문서 통해 드러나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와 영국 일간 가디언은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보기관(SSA)이 작성한 문서 수백 건을 입수해 수면 아래에 있던 정보기관들의 은밀한 활동들을 폭로했다. 이 문건들은 2006년부터 지난해 12월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북한 스파이 포섭 관련 내용은 ‘영국/남아공 최고 기밀’이라는 제목의 문서에 등장한다.
영국은 5개국 정보 협력체 ‘파이브 아이스(Five Eyes)’의 일원으로 수집한 정보를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공유한다. 2013년 미 중앙정보국(CIA) 전직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비밀문건이 첨단 정보기술(IT) 장비를 활용한 무차별 도·감청 관련 내용이라면 이번 SSA의 문서는 각국 정보기관이 정보원, 내부 협조자 등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수집한 ‘휴민트(인적 정보)’라는 측면에서 차별화된다.
MI6는 국제사회의 위협으로 등장한 북한 핵개발 정보를 캐기 위해 북한 인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문건에 따르면 MI6가 ‘X’로 명명한 이 북한인 남성은 북한 핵프로그램에 관한 일급비밀을 알고 있는 것으로 묘사됐다. MI6는 X를 포섭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핵무기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려 했다. 또한 불투명한 북한의 의사결정 구조도 들여다보려 했다.
알자지라 등은 X의 신원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문서에 등장하는 X 관련 정보들을 모두 가린 채 공개했다. 북한 당국이 추적할 수 없도록 문서가 작성된 날짜도 지웠다.
MI6는 문서 작성 1년 전 X와 처음 만났다. 첫 만남은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정보를 건네는 대가로 거액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또 일회성 거래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은밀한 관계’ 유지를 희망했다. X는 MI6의 제안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X는 MI6 요원에게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 보겠다”며 “안전이 확보된 상황에서 다시 만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당시 MI6는 X가 결심을 굳히면 회신할 수 있도록 보안이 유지되는 ‘비밀 전화번호’도 건넸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MI6는 SSA 측에 공항에 도착한 X의 신원을 확인한 뒤 MI6 요원들이 기다리는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X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북한 측 동료들이 끼어들지 않아야 하며, X가 SSA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문서만으로는 MI6가 실제로 X와의 재회에 성공했는지, X가 스파이 제안을 받아들였는지가 불분명하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 이스라엘 총리의 이란 핵 수준 과장 의혹 제기
하지만 SSA의 문서에 따르면 모사드의 판단은 네타냐후 총리의 생각과 정반대였다. 모사드는 이스라엘 총리의 유엔 연설 약 한 달 뒤인 2012년 10월 22일 SSA와 공유한 기밀문서에서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의 핵 안보 위협을 의도적으로 부풀렸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모사드는 당시 이란이 20% 농축 우라늄을 약 100kg 보유한 것으로 파악했지만 이는 핵무기 개발과는 거리가 먼 상태라고 결론지었다. 문서에는 ‘어떤 지시가 내려지면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라고만 써 있다. 알자지라는 당시 미 국가정보국도 모사드와 같은 판단을 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 한국 정보기관, 그린피스 지도자 관찰
SSA의 보고서에는 한국의 정보기관이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지도자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지도자의 개인정보와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2012년 원전 반대 캠페인에 참여하려는 마리오 다마토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대표의 입국을 허가하지 않았다. 또 미 중앙정보국(CIA)이 본국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접선을 시도했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유엔에서 국가로 인정받으려는 팔레스타인을 압박했다는 내용 등도 SSA의 보고서에 담겼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