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영 사회부 차장
2013년 한국의 자살자는 1만4427명이다. 하루 39.5명꼴이다. 인구 10만 명당 28.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를 달린다. 자살에 따른 연간 경제적 손실이 6조4800억 원에 이른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문제는 나라 차원의 ‘예방주사’가 없다는 점이다. 과속단속 카메라를 달고 범칙금을 올리면 분명 교통사고 사망자가 줄어든다. 원인을 파악해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한 결과다. ‘자살의 다리’로 불리던 서울 마포대교에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자살 방지용 조형물을 설치해 자살자를 크게 줄였다. 서울 지하철역은 스크린도어로 자살 시도를 원천 봉쇄했다. 하지만 치솟기만 하는 자살통계는 이런 조치가 ‘풍선 효과’를 낳았을 뿐이란 걸 보여준다. 자살 이유를 제대로 알아내지 못해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 아내 통장엔 3억 원이 들어있는데 명문대 출신에 서울 강남에 사는 가장이 왜 자녀와 아내를 죽이고 자살을 시도했는지. 이번 설 연휴에 경남 거제에서 세 자녀와 아내를 죽이고 목숨을 끊은 30대 가장은 빚 1억5000만 원을 포함한 돈 문제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 것일까. 흉악 범죄와 겹친 자살이 잇따르지만 경찰은 ‘사건’을 처리할 뿐이다. 자살을 연구하고 예방할 전문 기구와 협력해 원인을 분석하는 일 따위는 하찮다고 여겨서인지 아직 이 땅에선 진행되지 않고 있다.
광고 로드중
미국에선 자살자 가족의 44%가 사망 원인을 놓고 거짓말을 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을 정도다. 가족부터 숨기고 싶어 하니 자살 이유를 밝혀내기 어렵다. 토머스 조이너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부 교수는 자살 이유로 세 가지를 꼽는다. 좌절된 소속감(상실감), 스스로 짐이라 생각하는 무능감, 죽음의 고통을 받아들일 만한 부상(육체적 심리적) 경험이 그것이다.
유별난 경쟁의식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 이 이론을 적용하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이 잠재적 자살자로 분류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감내하기 힘든 모욕감이나 생활고가 흔한 사회라 죽음 문턱까지 간 듯한 고통을 맛본 사람도 많다. 잠깐 한눈팔면 낙오자가 되고 지역과 학교를 따져 패거리 짓는 일이 여전하다. ‘개인의 선택’ 영역으로 놔두기엔 연간 자살자 1만5000명이라는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눈에 보이는 ‘스크린도어’에만 집중할 뿐 국민이 목숨을 내던지는 이유를 찾아내고 버팀목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자살에 눈감고 국민을 포기하는 정부 아니겠는가.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