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젊음의 도전]공익에 눈돌린 ‘사회적 기업’
“소방관의 헌신 기억해주세요” ‘파이어마커스’ 이규동 대표와 박지원, 박용학 씨(왼쪽부터)가 지난달 27일 폐소방호스를 재활용해 만든 가방을 선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소방호스의 그을음이 우리 가방의 매력”이라며 활짝 웃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해 호서대 소방학과를 졸업한 이규동 씨(27). 그는 한때 서울 노량진에서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소방관이 되는 게 이 씨의 오랜 꿈이었다. 하지만 이 씨는 2년 전 꿈을 접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현재 낡은 소방호스를 재활용해 업사이클링(재활용품을 부가가치 높은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생산방식) 가방을 만드는 기업 ‘파이어 마커스(Fire Markers)’의 대표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창립 멤버 모두 가방 디자인에는 전문성이 없었다. 그나마 평소 옷 수선을 즐겨하던 후배 박지원 씨(26)가 초안을 그렸다. 하지만 샘플을 만들어주는 곳이 없었다. 공장에선 샘플 하나 만드는 데 60만 원을 달라고 했다. 보다 못한 이 씨의 아버지가 직접 나섰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라”며 창업을 극구 말리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직접 재봉틀을 잡았다.
어렵사리 탄생한 첫 샘플은 여러 공모전에서 호평을 받았다. 샘플로 만든 동전지갑 40개를 완판하며 자신감도 얻었다. 사업 취지에 공감한 한 공장 대표가 제품을 생산하기로 하면서 이달 말 가방 네 가지를 출시하게 됐다. 이 씨는 “수익의 일정 부분은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에 쓸 생각이다. 노후 장비 교체가 시급한 지방의 작은 소방서부터 돕고 싶다”고 말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젊은 세대의 발걸음이 사회적 기업으로 모이고 있다. 올해 1월까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인증한 사회적 기업은 1251곳. 2013년 856곳에서 2년 사이 50% 가까이 늘었다. 올해 정부 지원 예산만 1465억 원에 달한다. 그중에는 중년층의 ‘인생 2모작 창업’도 있지만 신생 기업의 상당수는 이 씨 또래의 젊은 기업가들이 이끌고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 힐링브러쉬 김요셉 대표가 지난해 12월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한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 지나가는 시민이 빔 프로젝터 앞에 서면 학대 부모를 막는 ‘슈퍼맨’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힐링브러쉬 제공
‘탈북자가 쪽방촌 주민을 돕는다.’ 김지한 사회적기업활성화포럼 기획위원장은 “양 씨 세대가 할 수 있는 순수한 발상이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이 탈북자, 다문화가정, 노인 빈곤층 등 다양한 소외계층과 마주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캠퍼스에서는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사회 양극화 문제를 더 고민하게 된 것도 큰 이유다. 김 위원장은 “경제 위기를 겪은 젊은이들이 대안 경제, 사회적 경제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소통을 중시하는 수평적 구조도 젊은 세대가 사회적 기업에 끌리는 이유다. 공익광고대행사 ‘힐링브러쉬’의 김요셉 대표(32)는 “선정적인 마케팅만 강조하는 일반 광고대행사의 작업 방식과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싫어 직접 회사를 차렸다”고 말했다. 힐링브러쉬가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 등에서 진행한 아동학대방지캠페인은 입소문을 타고 20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 48개국으로 퍼져 나갔다.
○ “은둔형 외톨이 10만 명 세상 속으로”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고민은 국경을 넘나들기도 한다. 최근 ‘K2인터내셔널 코리아’는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K2인터내셔널’은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와 니트(NEET·구직 노력을 하지 않는 실업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9년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해마다 1000여 명의 자립을 돕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정부와 민간기업이 외면하는 사각지대를 보듬는다. 사회적 기업 선진국인 독일은 협동조합 형태의 사회적 기업이 9000여 개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독일이 세계 금융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를 풀뿌리 사회적 기업의 힘에서 찾는다. 사회적 기업은 이미 각광받는 직업 가운데 하나다. 미국에서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티치포아메리카’는 대학생들의 취업 희망 10위에 꾸준히 꼽히고 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