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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되살린 유호진 PD “기적이라고 하지만…”

입력 | 2015-01-25 14:19:00


시간이 지나면서 시청률이 큰 폭으로 떨어진 프로그램의 인기를 다시 회복하기란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그런 점에서 KBS ‘해피선데이-1박2일’의 선전은 이례적이다. 약 1년 전 시즌2 당시 낮은 시청률로 폐지논란을 겪었던 ‘1박2일’은 시즌3로 바뀌면서 꾸준히 시청률이 올라 현재 16주 째 연속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다.

‘1박2일’ 연출자인 유호진 KBS PD(35)는 기사회생한 ‘1박2일’의 숨은 공신이다. 2008년 KBS에 입사한 후 당시 나영석 PD(현 tvN PD)가 이끌던 ‘1박2일’ 시즌1의 막내 조연출을 지냈던 그는 시즌3를 통해 연출자로 정식 데뷔했다. 가차 없이 편집한다며 ‘가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요새 TV에서 가장 많이 얼굴을 내미는 PD이기도 하다.

-‘1박2일’의 선전을 두고 다른 방송사 PD가 ‘기적’이라고 하더라. 비결이 뭔가.
“운이 좋았다. 무엇보다 멤버 구성이 요새 트렌드에 맞았다. 한명이 주도하기보단 다극적인 출연진에 대한 호응이 높았다. 더불어 언젠가는 뭔가 하겠지 하고 기다려준 충성도 높은 시청자가 있었고, 이미 아이디어 고갈을 경험했던 우리와 달리 경쟁 프로들이 최근 사춘기를 맞이한 것도 영향을 줬다.”

-멤버들의 케미(궁합)가 좋다. 고려해서 섭외했나.
“상당부분 우연이다. 단적인 예가 김준호인데 촬영 전날 밤 합류가 결정됐다. 사실 전작을 보곤 안정적인 카드로 봤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오랫동안 콩트를 하면서 스토리텔러의 역량을 쌓은 것 같다. 멤버들이 다들 고만고만하다보니 서열이 전복될 수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승부욕 강했던 시즌2 멤버에 비해 시즌3의 멤버들은 관계지향적인 편이다. 연출자인 나조차 경쟁을 별로 안 좋아한다.”

-방송 햇수가 8년 쯤 되면 새로운 걸 찾기 힘들지 않나.
“가볼 만한 곳은 다 가봤다. 방영 초반에는 장소로 새로움을 줬겠지만 이젠 독도든 백령도든 대부분 가본 장소다. 장소에 천착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떤 여행을 할지를 먼저 정한 뒤 장소를 생각했다. 다만 너무 도식적인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한 예로 얼음골이라는 곳에 간다고 하면 다들 얼음 깨기 게임을 하고 이긴 사람이 밥 먹는 패턴을 생각하는데 그렇게 너무 목적이 드러나는 여행은 피하려고 했다.”

-TV에 얼굴 내미는 양이 많다. 원래 아나운서가 꿈이었다던데….
“촬영 현장의 민낯을 보여주는 건 이 프로 고유의 색깔이다. 시청자들은 제작과정, 촬영장 자체에 관심을 가진다. 연예인 출연자 뿐 아니라 작가, 조명 감독도 출연자의 일부로 여긴다고 생각한다. 아나운서를 꿈꿨던 건 맞다. 대학(고려대) 방송국에서 기자하다가 군 시절 국군심리전단 대북방송 아나운서를 했는데, 진짜 좋았다. 그런데 계속 카메라에서 떨어지고 좌절했다. 이후 패션지 기자도 했는데 적성에도 잘 맞고 좋았지만 패션지 기자 수명이 너무 짧아서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2008년 KBS PD로 입사했다.”

-시즌1 조연출을 할 땐 음악 프로 연출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맞다. 사실 조연출 할 당시만 해도 음악 프로 자체가 별로 없었다. 내가 음악 프로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당시 멤버들이 빵 터졌을 정도로 백안시 됐으니까. 그래도 최근에는 오디션 프로도 늘고 음악 프로가 조명 받는 듯 하다. 언젠가 음악 프로그램을 하겠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솔직히 시즌2 끝나고, 시즌3의 PD를 맡으라고 했을 때 원망스럽지 않았나.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세간은 많은데 빚을 잔뜩 진 종갓집 며느리 같은 역이잖나. 당시 서수민 CP가 자잘한 구성을 바꾸는 것 보다는 프로 자체를 둘러싼 스토리 메이킹을 원했고 그래서 내가 발탁됐다고 본다. ‘시즌1의 어리버리한 막내가 존폐 위기에 놓인 시즌3의 메인이 됐다’는 이야기 자체가 주목을 끌기 쉽지 않나. 회사 차원에서는 젊은 PD를 기용할 경우 실패를 하더라도 재기가 가능하다는 것도 고려한 것 같다.”

-PD가 젊으니까 프로가 젊어진 면도 있을 것 같다.
“메인 PD가 어리다보니 연출진의 평균 근속 연수가 4년 정도다. KBS 직원 평균 근속 연수가 19년인 걸 감안하면 ‘1박2일’팀은 가장 어린 팀이라고 할 수 있다.”

-1년 중 위기는 언제였나.
“여름 바캉스 특집이었다. 그 때 비키니 미녀 논란(여성 상품화 논란)도 있었지만 정말 힘들었던 건 아이디어가 안 나와서 였다. 그 때 시즌2 연출자였던 최재형 선배가 많은 조언을 해줬다. 제작진이 주도해 촬영 일정을 빽빽하게 짜기 보단 출연자들을 믿고 관찰 예능적인 요소를 늘렸다. 그 후부터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앞으로 계획은 뭔가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준비할 수 있는 업계가 아니다. 시즌3 초반 막막해서 (나)영석이 형한테 전화를 해서 ‘다음 편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이번 편만 생각하라’고 하더라. 그게 정답 같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