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 [1부: 줄줄 새는 국고]<下>나라 부동산 활용 지지부진
서울 강남구 논현로 강남을지병원 사거리에 있는 ‘서울세우관’. 강남의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국유재산이지만 국세청 공무원들의 기숙사로 쓰이며 20년 동안 사실상 방치돼 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서울 강남 대로변의 이 정체불명 건물은 국세청 직원들이 기숙사로 쓰는 ‘서울세우관(稅友館)’이다. 정부는 이 건물을 1993년 말 세금 체납자에게서 세금 대신 받았다. 옛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은 1995년 강남에서 세무서 신설을 준비하던 국세청에 ‘세무서 지을 자금을 마련하라’며 건물소유권을 넘겼다. 하지만 국세청은 이 건물을 1999년부터 직원 기숙사로 사용해왔다.
서울세우관의 공시지가는 지난해 1월 기준 180억 원. 시세는 3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도산대로를 따라 대로변에 있는 건물이라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전국 각지의 값비싼 국가재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나라 가계부를 적자에서 흑자로 돌릴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라 부동산의 덩치는 커졌지만 활용도는 저조하다. 2013년 국유재산 912조 원 가운데 국가가 민간에 위탁해 리모델링하는 등의 방식으로 개발한 규모는 569억 원(0.006%)에 불과하다. 지난해는 공시지가 기준 3600억 원 규모의 국유재산이 민간에 위탁돼 개발이 진행돼 개발 규모가 다소 늘었지만 여전히 개발 비율이 0.1%도 안 된다.
일선 공무원들은 부처와 산하기관 보유 부동산을 개발해 수익을 올리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개발을 추진하다가 실패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리모델링 등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것. 일례로 국토교통부 산하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은 경기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에 있는 1만 m² 규모의 166억 원짜리 나대지를 1999년부터 줄곧 활용하지 않고 방치해 뒀다. 기재부는 항만청이 개발을 추진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해 2013년 관리권을 박탈했다.
기재부는 서울 논현로의 국세청 기숙사 건물도 이달에 국세청으로부터 돌려받기로 했다. 앞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관리를 하면서 개발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정부는 국유재산 개발을 통해 수익을 올려 나라 곳간을 채우는 선순환 구조를 공무원 조직이 만들기는 어렵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기재부 고위 당국자는 “‘뒷일’을 걱정하는 공무원식 발상으로 수익형 부동산 개발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민간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민간이 국유재산의 성격과 주변 입지를 분석해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정부가 지원하는 구조라야만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조만간 전국에 방치돼 있는 국유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민간투자 확대 방안을 구체화해 제시할 예정이다. 현재 전국 세무서와 우체국 등을 유망한 개발대상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도심의 3층짜리 세무서를 민간 자본이 15층으로 재개발하면 관공서가 사무실을 공짜로 쓰는 대신에 나머지 층은 개발업자가 30년 한도로 임대사업을 해 임대수입을 올리도록 하는 방식이다. 방문규 기재부 2차관은 “국유재산을 적극 개발하면 나라 살림살이를 불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자리도 늘리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홍수용 / 박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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