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 늘어 먹이 부족해지자 한밤 산책로 출몰 아파트단지 쓰레기통까지 뒤져, 주민들 불안 호소… 감염 우려도
기자가 10일 서울 강남구 양재천 산책로를 걷다 겪은 일이다. 양재천을 중심으로 출몰하는 너구리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행성인 너구리가 해가 지고 나면 먹이를 찾아 사람들 앞에 불쑥불쑥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서 먹이를 구하는 것에 익숙해진 일부 너구리는 사람을 피하지 않고 인근 아파트 단지에까지 침투해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양재천은 1995년부터 진행된 서울시 생태하천 복원사업 중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이 지역 너구리들은 다른 동식물들과 함께 생태계 복원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서식하기 좋은 환경에서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서식지 경쟁이 심해지고 먹이가 부족해지면서 너구리들은 강남 지역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음식물 쓰레기통 등을 뒤져 먹이를 구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옴이나 진드기와 같은 피부병 또는 광견병이 옮을 수 있어 너구리와의 접촉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사람뿐 아니라 반려견이 물리는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신남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너구리가 갯과 동물이기 때문에 치사율이 매우 높은 광견병 같은 질병의 매개체가 될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이 일대에 서식하는 너구리 개체 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 조사했지만 정확한 결과는 얻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24시간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지 않는 이상 개체 수 및 서식지 파악은 불가능하다”며 “지역 주민들이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잘하고 펜스를 설치하는 등 가능한 한 너구리와 접촉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성진 psjin@donga.com·김민·손가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