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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新 명인열전]귀뚜라미 대량사육…‘미래의 먹거리’ 책임진다

입력 | 2015-01-12 03:00:00

‘귀뚜라미 박사’ 이삼구 대표



전북 완주에서 벤처기업 ‘239’를 운영하는 이삼구 대표. 그는 식용곤충 가운데 귀뚜라미에 주목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서 꼬리칸 사람들에게 제공되던 검은색 단백질 블록은 바퀴벌레가 원료였다. 50대 이상이라면 어린 시절 들판을 헤집고 다니며 잡은 메뚜기를 볶아 먹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영화와 추억 속 장면이 아니다. 곤충을 미래의 식량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전북 완주에서 벤처기업 ‘239’를 운영하는 이삼구 대표(49)는 식용이 가능한 많은 곤충 가운데 귀뚜라미에 주목했다. 귀뚜라미가 영양 성분이 우수하면서 키우기 쉽고 식용으로 거부감도 적다는 것이다. 닭과 물고기 사료 등 쓰임새가 많은 것도 장점이다.

○ 공학박사에서 귀뚜라미 박사로

이 대표는 공학박사다. 2001년 전북대에서 기계 분야 유체 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난해까지 전북대 산학협력단 연구교수로 일했다. 그는 무지개를 인공적으로 원하는 장소에 만드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2011년에는 미국의 유명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과학자다.

그가 귀뚜라미 사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2년 유엔 산하 국제표준화기구(ISO) 식량증산 농용방제분과 한국대표로 활동하던 중 우연히 유엔 식량보고서를 접한 뒤였다. “선진국에서는 대가뭄 등 기상이변에 대비해 미래식량 대안으로 곤충 식용화에 이미 들어섰다는 보고서를 보고는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용곤충은 세계 곳곳에서 이미 판매 중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네덜란드 하렘, 영국 런던, 싱가포르 비보시티 등 19개 도시에서 곤충을 파는 식당이 운영 중이다.

이후 그는 곤충 사육에 매달렸다. 식용곤충 가운데 한국에 적합한 것으로 누에, 메뚜기, 굼벵이, 갈색거저리(밀웜) 흰점박이꽃무지 등이 꼽혔다. 그러나 밀기울(밀에서 가루를 빼고 남은 찌꺼기)이 먹이인 갈색거저리를 대량사육하기 위해서는 밀을 수입해야 하고, 썩은 참나무를 먹는 굼벵이를 대량사육하려면 삼림 훼손이 우려됐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귀뚜라미가 국내에서 가장 쉽게 사육할 수 있고 전망이 좋은 곤충으로 판단됐다.

귀뚜라미는 영양 덩어리였다. 단백질이 쇠고기보다 훨씬 많았고 오메가-3 등도 풍부했다. 키우기도 쉬워 좁은 장소에서 대량 사육이 가능하고 번식도 어렵지 않았다. 그는 일반적으로 1년에 4, 5회 산란하는 귀뚜라미가 10여 차례 번식 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찾아냈다. 귀뚜라미는 풀과 야채를 잘 먹고 음식쓰레기를 먹어 치워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둔다. 그는 곤충대량사육시스템과 대량부화, 음식물처리 등에 관한 10여 개의 특허를 보유하거나 출원해 놓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전주와 서울, 완주 와일드푸드 축제 등 8곳에서 귀뚜라미를 이용한 음식 시식회를 열었다. 시식회에는 귀뚜라미를 이용해 만든 월병 비스킷 쿠키 스낵바 샌드위치 버거 스테이크가 등장했다. 형체를 그대로 살려 만든 것도 있고 말린 가루를 사용한 요리도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처음엔 거부감이 있었지만 먹어 보니 식감이 괜찮다”는 것이었다. 서양에서는 귀뚜라미를 하늘새우나 땅새우라고 부르기도 한다. 맛과 영양이 새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실제 시식회에 나온 볶은 귀뚜라미는 말린 새우와 맛이 비슷했고 가루는 고소한 들깨가루와 유사했다.

그는 최근 완주에 농장을 세워 본격적으로 귀뚜라미 사육을 준비 중이다. 자신이 개발한 대량 사육방식으로 올해 1500만 마리, 내년에는 5000만 마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나는 귀뚜라미 박사다’(가제)라는 책도 집필 중이다.

○ ‘거부감’ 극복이 중요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무엇보다 곤충을 먹는다는 거부감을 줄이는 게 과제다. 국내에서는 누에와 번데기, 동충하초 정도만 식용으로 이용될 뿐 나머지 곤충은 여전히 혐오 식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음식 개발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정부도 곤충산업 지원법률을 제정하고 곤충산업 육성 5개년 종합계획을 세우는 등 곤충의 식량화를 위해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초보 단계다. 현재 귀뚜라미는 식품 원료로 등록돼 있지 않아 시중에서 식품 원료로 판매할 수 없고 상용화가 어렵다. 일부에서 귀뚜라미를 사육하고 있지만 대부분 어류 사료나 낚시 미끼로 판매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르면 올해 안에 귀뚜라미가 식품원료로 등록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아가 귀뚜라미를 식용뿐 아니라 사료용, 건강식품, 의약품 원료 추출 등에 폭 넓게 사용할 꿈을 꾸고 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