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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본 2014]정치권 뒤흔든 말말말

입력 | 2014-12-29 03:00:00

“통일은 대박” “호남에 예산폭탄”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올해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을 화두로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

《 2014년 한 해 동안 정치권은 격랑에 휩싸였다. 통일대박론으로 시동을 걸었지만 4월 16일 세월호 침몰로 정국은 파행을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직후 “모든 게 내 책임”이라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보통 여권의 무덤이었던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을 심판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7·30 재·보선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호남(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하는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개헌론과 ‘정윤회 동향’ 문건으로 촉발된 비선실세 논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놓고 청와대, 여야가 격돌했다. 격랑의 한복판을 관통한 정치권의 ‘말’을 정리했다. 》

1월 6일 朴대통령 “한반도 평화통일은 대박”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을 던졌다. ‘통일’은 즉각 집권 2년 차 정부의 최대 국정 화두로 떠올랐다. 그 후 박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인 통일 준비에 나섰고 해외 순방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우리는 물론이고 전 세계 인류에 대박”이라고 설파했다.

야당은 ‘통일 대박론’을 견제했다. 당시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는 교류도 협력도 평화정착의 문도 닫아 놓고 난데없는 통일경제론 풍선 띄우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상임고문은 “평화통일은 대박이지만 흡수통일은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사자인 북한의 반응은 냉담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5월 “통일 대박론은 온 겨레의 지향과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흉악무도한 북침전쟁론이며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통일 대박론을 ‘전쟁 대박’ ‘침략 대박’으로 비하했다. 10월 경기 연천에서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이 대북 전단을 살포하며 남북관계가 냉각된 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통일 대박론은) 실현될 수 없는 개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7월 31일 김한길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졌다”

7·30 재·보궐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중도 사퇴한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호남에 ‘예산 폭탄’을 안기겠다.”

‘박근혜의 남자’로 불리는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7·30 재·보궐선거 전남 순천-곡성에 도전장을 냈을 때만 해도 그의 승리를 점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 후보는 “일단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1년 반 뒤 총선에서 버려 달라”는 간절한 호소로 철옹성 같은 지역주의의 벽을 깨고 당선됐다. 새누리당은 이 후보를 비롯해 재·보선 선거구 15곳 중 11곳에서 승리했다.

반면 3월 26일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새정치민주연합)이 합당하면서 출범한 ‘김한길-안철수 투톱 체제’는 7·30 재·보선 참패로 내년 3월까지 예정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127일 만에 막을 내렸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선거를 앞둔 7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원래 우리가 (의석을 갖고) 있던 5곳에서 현상 유지만 해도 잘하는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4석에 그쳤다.

이에 김 대표는 7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졌다. 죄송하다”며 사퇴했다. 안 대표도 “평당원으로 돌아가도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경기 수원병(팔달)에서 낙선한 손학규 상임고문은 “정치에서는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게 평소 저의 생각이다”라며 정계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10월 2일 박영선 “세월호법, 흔들리는 배에서 활 들고 협상”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박영선 새정치연합 의원.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부를 뒤흔든 ‘대형 악재’였다. 박 대통령은 5월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겠다”며 해양경찰청 해체와 국무총리실 산하 국민안전처 신설을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일부 내각 교체 등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했지만 안대희 문창극 등 두 총리 후보의 낙마로 더욱 위기에 몰렸다. ‘국민검사’로 불렸던 안 전 총리 후보는 고액 전관예우 논란이 계속되자 5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가족들과 저를 믿고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버겁다”며 스스로 물러났다.

세월호특별법 제정 과정에선 여야 합의가 두 차례나 번복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선 세월호특별법 협상에 불만을 가진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박영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무너지고 ‘문희상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다.

박영선 의원은 10월 2일 원내대표직을 사퇴하면서 “흔들리는 배 위에서 활을 들고 협상이라는 씨름을 벌인 시간이었다”며 강경파의 반발을 비판했다.

10월 16일 김무성 “개헌논의 봇물 터지면 막을 길 없어”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가 청와대의 반발로 이튿날 사과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올해 당청 갈등의 도화선은 ‘개헌’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월 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권에서 불거진 분권형 개헌 논의에 대해 “경제 회생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개헌 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 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열흘 뒤인 16일, 중국을 방문하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개헌 논의는 정기국회가 끝나면 봇물이 터질 것이고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물밑에서 청와대의 불편한 기류가 전달됐다고 한다. 다음 날 김 대표는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개헌론을 촉발할 생각은 없다”며 물러섰다. 야당은 ‘청와대 눈치 보기’라고 비판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개헌 가이드라인은 의회주의를 위협하는 위험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가 사과한 지 나흘 뒤인 21일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당 대표인 분이 많은 기자 앞에서 실수로 (개헌 논의를) 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했다는 게 정설이었다. 당청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12월 2일 조응천 “정권주변 지키는 감시견 역할에 충실”

‘정윤회 동향’ 문건 유출과 관련해 검찰에 출두하는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정윤회 동향’ 문건 유출로 촉발된 비선(秘線) 논란이 정국을 강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 씨가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과 이른바 ‘십상시’를 꾸려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담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보고서가 공개된 것이다.

청와대는 ‘문건 유출’에 초점을 맞췄다. 박 대통령은 7일 당 지도부와 만나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정 씨에 대해선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사람”,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관련해선 “동생 부부는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핵심은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운영 시스템 붕괴”라고 주장했고 우윤근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이 “수사 가이드라인을 긋고 검찰 수사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에 빗댄 발언들이 화제가 됐다. 정 씨는 “대통령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사냥개가 돼 숨어 지냈지만 이젠 진돗개가 되겠다”고 밝혔다.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은 2일 “나는 정권 주변을 지키는 감시견 역할에 충실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오찬에서 “실세는 없다. 실세는 청와대 진돗개”라며 비선 논란을 일축했다.

○ 12월 19일 김영환 “우리는 왜 이정희에게 끌려 다녔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나자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정희 전 대표.

“(통합진보당의 활동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숨은 목적을 갖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하는 등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19일 정부가 청구한 통진당 해산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8 대 1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했다. 헌정 사상 첫 정당해산 결정은 정치권에도 후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20일 윤두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통해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진보진영은 “민주주의의 훼손”이라고 반발했다.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는 20일 한국진보연대의 민주수호국민대회에서 “통진당은 독재정권에 의해 해산됐다”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헌재의 판결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정당의 자유가 훼손될까 우려스럽다”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당내 일각에선 과거 통진당과의 야권연대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4선의 김영환 의원은 19일 페이스북에 “왜 우리는 종북 의심을 받는 정당과 그토록 연대에 목말라하고 통합을 애걸했고, 우리 후보는 대선 내내 이정희 후보에게 끌려 다녔는가”라며 자성을 촉구했다.

손영일 scud2007@donga.com·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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