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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장택동]정검분리

입력 | 2014-12-24 03:00:00


장택동 정치부 차장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의 핵심 쟁점은 이른바 ‘병풍(兵風)’이었다. 5월 의무부사관 출신 김대업 씨가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을 제기하면서 온 나라가 들썩였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10월 “병역 면제 의혹은 신빙성이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정치권은 이 사건이 대선 판세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

5년 뒤 17대 대선을 앞두고는 ‘BBK 사건’이 터졌다.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놓고 여야는 난타전을 벌였고 결국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검찰은 대선 직전 이 후보에 대해 ‘혐의 없음’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4년 11월에는 정윤회 씨가 청와대 인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 운영에 개입했다는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의 문건이 언론에 공개됐다. 이름이 등장한 청와대 인사들은 곧바로 검찰에 명예훼손으로 고소장을 냈다. 조만간 발표될 검찰의 수사 결과에 온 정치권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 사건은 검찰 수사가 정치권에 큰 영향을 줬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더 있다. 먼저 정치권의 고소 고발로 검찰에서 수사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2002년에는 한나라당과 김 씨가 서로 고소 고발을 했다. 2007년에는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고소 고발이 이뤄졌고, 나중에는 당시 여당이던 대통합민주신당이 이명박 후보를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이 자발적으로 나선 게 아니라 정치권의 고소 고발로 정치적인 사안에 끌려 들어간 형국이다. ‘정윤회 동향’ 문건도 정치권에서 풀어야 할 일을 검찰에 넘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으면 정치권에서 ‘편파 수사’, ‘부실 수사’라고 지적하며 정쟁으로 끌고 가려 하는 것도 비슷하다. ‘병풍’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당시 민주당은 재수사와 특검 도입을 촉구했고, 한나라당도 민주당 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과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BBK 수사 결과 발표 뒤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의 재수사를 위한 지휘권 발동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특검까지 실시됐다. ‘정윤회 동향’ 문건 수사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야당은 부실 수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치인이 법을 어겼다면 수사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정치권이 이렇게까지 검찰을 끌어들이고, 정쟁에 이용하는 일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성숙하지 못한 한국의 정치권이 만들어내는 특이한 정치문화다. 정교(政敎·정치와 종교)분리의 원칙처럼 이제 한국에서는 정검(政檢·정치와 검찰)분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법하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소속 당원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놓고 여야가 ‘공안 정국 조성’ 공방을 벌일 조짐이다. 정치권은 검찰을 이용하지 말고, 검찰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