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폴리-흥국생명 루크-IBK기업은행 데스티니와 딸(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모두 동료들의 덕” 먼저 요청해 회식 마련
루크, 구단 양해얻고 자비 트레이너 불러
IBK, 데스티니 딸 돌잔치 열어 감동 선물
혼자서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선수는 V리그의 장미다. 화려하지만 가시도 있다. 이들의 수준 높은 플레이에 팬들은 즐거워하고 활약여부에 따라 팀 성적도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토종 선수들과 섞이지 않을 경우 팀을 괴롭히는 아픈 가시가 된다. 그래서 “외국인선수는 실력보다는 인성과 화합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대건설, 흥국생명, IBK기업은행 등 여자부 상위권 3개 팀은 특색 있는 외국인선수 덕분에 행복하다. 잘나가는 팀은 다 이유가 있다.
● 동료들 위해 언제나 지갑 먼저 여는 현대건설 폴리
평소에도 자주 지갑을 열어 동료들에게 커피도 사고 선물도 하는 폴리는 아제르바이잔에서 ‘밀리언 걸’이라는 애칭이 생겼다. 한국 팬들이 터키 리그에서 뛰는 김연경의 소식을 매일 듣고 기뻐하듯이 폴리의 활약상은 실시간으로 아제르바이잔 배구팬에게 뉴스로 전해지고 있다. 라운드MVP 상금은 물론 트리플크라운 달성 때마다 100만원을 받았다는 소식이 계속 알려지면서 ‘밀리언 걸’로 불리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별다른 대화나 스킨십이 없었던 지난 시즌의 외국인선수 바샤에 비한다면 폴리는 수다쟁이라고 할 만큼 말도 많고 친화력도 좋다. 식성도 까다롭지 않다. 여러 음식을 고루 잘 먹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스시와 바다가재. 현대건설 국영준 사무국장은 “폴리를 위해 바다가재 회식도 여러 번했다. 지금처럼만 잘 해준다면 매일 바다가재를 못 사주겠냐”고 했다. 현대건설은 이런 폴리를 놓치기 싫어서 다음시즌에 실시하는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반대한다.
● 자비 들여 개인 트레이너 불렀던 흥국생명 루크
흥국생명의 루크는 최근까지 개인 트레이너를 따로 고용해 몸을 가다듬었다. V리그에 참가한 이후 친구와 단 둘이 지내던 루크는 11월 말 통역과 긴밀하게 상의했다. “오랫동안 내 몸을 돌봐준 개인 트레이너를 한국으로 초청하고 싶은데 팀이나 트레이너에 폐가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1∼2라운드에서 많은 공격가담을 했던 루크는 이상 신호가 오자 아제르바이잔 라비타 바쿠시절부터 몸을 돌봐준 개인 트레이너에게 SOS를 친 것이다.
루크는 다른 외국인선수와 달리 쉬는 날에도 친구와 조용히 숙소에서 지내는 스타일이다. 한국에 온 뒤로 단 한 번 서울 이태원에 가봤을 뿐 쉬는 날이면 친구와 요리하고 쉬는 것이 취미다. 동료들도 편하게 챙겨주고 책임감도 강해 모든 이들이 좋아한다. 식성도 좋다. 김치는 물론이고 외국인에게는 먹기 힘든 파김치까지 건강 샐러드라면서 잘 먹는다. 흥국생명에게는 그야말로 넝쿨째 굴러들어온 복덩어리다.
● 까칠한 데스티니 위해 먼저 마음 여는 IBK기업은행
엄마가 돼서 V리그에 컴백한 IBK기업은행의 데스티니는 12일 한국에서 첫 딸의 돌을 맞았다. 전날 GS칼텍스와의 원정에서 풀세트 접전을 치렀는데 데스티니는 무려 45점을 쓸어 담으며 팀에 승리를 안겼다. 딸 티파니의 첫돌을 맞아 미국에서 달려온 남편이 평택 이충문화체육센터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뒤로는 코트에서 날아다녔다.
세계 정상권 선수답게 자신을 어필하는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난 데스티니는 최근 몸 상태가 좋아져 예전의 기량이 나오자 더욱 플레이가 화려해졌다. 흰색 헤어밴드를 착용해 눈에 띄게 했고 멋진 공격을 성공시키면 중계방송 부스에 있는 GS시절 동료 이숙자 KBSN 해설위원에게 윙크를 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12일 데스티니와 딸을 위해 돌잔치를 열어줬고 많은 선물을 안겼다. 김도진 단장은 티파니를 위해 귀여운 한복을, 선수들은 아기 옷과 인형을 선물했다. 이정철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아기용 가방과 신발을, 사무국은 미니 유니폼을 안겼다. 이날 행사의 사회자는 외국인 돌잔치에 긴장했지만 한국식으로 진행했다. 데스티니는 처음 경험하는 한국의 정과 이벤트에 감격해 눈물을 펑펑 흘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마음도 달라진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