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無 혁신도시]2015년까지 180개 기관 옮기는 도시 10곳, 기반시설 턱없이 부족
아직도 공사중 한국전력 등 16개 공공기관이 이전하는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는 곳곳에서 진행 중인 각종 공사로 큰 불편을 겪고 있다. 한전 신사옥 인근에 건축 폐자재 등이 쌓여 있고(왼쪽 사진), 도로 곳곳에 주차된 차들 사이로 공사 차량들이 무질서하게 지나다니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업무 추진 과정에서 각종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많다. 국회에 사업 관련 보고하거나 세종시에 내려가 있는 주무 부처와 업무를 협의할 일이 많은데 지역적으로 멀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의사소통도 어렵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주로 남아 있는 협력업체들과 회의 한 번 열기도 부담스럽다. 공공기관들은 지역균형 발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혁신도시가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12일 오전 전남 나주시의 빛가람혁신도시. 서울 용산역에서 KTX로 3시간을 달려 나주역에 도착한 뒤 자동차로 10여 분을 이동해 영산강을 건너니 생경한 고층빌딩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의도의 2.5배 면적(7.3km²)인 이 혁신도시에는 호남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31층의 한전 본사 신사옥을 비롯해 한전KPS,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 공공기관 건물들이 들어섰다.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 이전 기관이 16개로 가장 많은 빛가람혁신도시에는 올 해 말까지 13개 기관이 이전을 마치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다.
올해 9월에 이전을 마친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이곳은 병원 경찰 학원이 없는 3무(無) 도시”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곳으로 이전한 기관 직원 중 가족들과 함께 이사한 직원들의 비중은 20%가 채 안 된다. 정주여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탓이 크다.
나주는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 기반시설이 그나마 나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도 병원은커녕 약국도 없다. 소화제 등이 필요하면 10km가량 떨어진 아파트단지 상가에 가야 한다. 파출소도 없어 나주경찰서가 ‘이동파출소’ 형식으로 순찰차를 보낸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직원 대부분은 하루 세 끼를 구내식당이나 인근 ‘함바(건설현장 식당)’에서 해결한다. 빛가람혁신도시에는 1만5000채의 주택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현재 입주할 수 있는 곳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은 아파트 2255채뿐이다. 직원 상당수는 주변의 원룸이나 20km가량 떨어진 광주시에 머물고 있다.
부부가 모두 공기업에 다녀 주변의 부러움을 샀던 한 전력 공기업의 김모 차장은 요즘 동정의 대상이 됐다. 남편은 전남 나주에, 금융공기업 직원인 부인은 직장이 옮겨간 부산에서 살게 됐다. 하나뿐인 중학생 아들은 고민 끝에 서울 할머니 집에 남겨 두기로 했다. 김 차장은 “서울 강남지역에서 자란 아들을 제대로 된 학원조차 없는 지방으로 데려갈 수 없었다”면서 “아내의 퇴직도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세 집 살림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혁신도시 특수(特需)를 기대했던 지자체들도 불만이 크다. 세종시 한 곳에만 국비 22조5000억 원이 들어간 것과 달리 혁신도시는 10곳을 합쳐 9조9500억 원의 사업비만 투입됐다. 이전 기관 임직원들이 지역 거주를 기피하다 보니 경제적 파급효과도 예상보다 미미하다는 게 지자체들의 불만이다. 나주시 관계자는 “정부가 공공기관 이전을 촉진하기 위해 지방세인 취득세 재산세 등을 감면해 주다 보니 정작 지방에 들어오는 세수(稅收)는 거의 없다”며 “기관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빚을 내야 할 지경”이라고 푸념했다.
나주=이상훈 january@donga.com / 정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