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다케쿠니 도모야스 지음/오근영 옮김/368쪽·1만8000원/따비
6·25전쟁 당시 부산 자갈치시장 노점상 풍경(위쪽 사진)과 오늘날 자갈치시장. 이곳의 명물 곰장어(먹장어) 구이는 일제가 곰장어 가죽만 가져가고 고기를 버린 데서부터 출발했다. 따비 제공
저자는 일본인 교수로 수산업 전문가가 아닌 현대문학 전공자다. 곰장어와 명태 등 생선에 얽힌 한일 양국의 역사라는 독특한 주제가 가능했던 배경일 수도 있다. ‘곰장어는 일본 깃발이나 한국 깃발을 세우고 바닷속에서 자신을 주장하고 있지 않다’는 저자의 말을 통해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
수산업자인 한국인 친구를 따라 부산을 자주 방문한 저자는 자갈치 ‘아지매’들의 곰장어 구이를 처음 맛본 뒤 이 묘한 요리의 연원을 추적해보기로 한다. 일본의 조선총독부 문헌과 당시 수산연구소 자료들을 꼼꼼히 뒤지고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살았던 토박이들도 인터뷰했다. 그 결과 곰장어에는 식민지 조선인의 눈물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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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전공한 교수답게 지은이는 재밌는 의문을 하나 더 품는다. 알루미늄 포일에 곰장어를 올려놓고 고추장을 듬뿍 넣어 볶는데 왜 ‘볶음’이 아닌 ‘곰장어 구이’로 불리느냐는 거다. 답은 부산 사람들의 증언과 일본인 수산학자들의 논문 속에 있었다. 예전에는 곰장어 특유의 냄새를 없애고 쫄깃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곰장어를 석쇠에 구웠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단골 메뉴인 명태도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함경남도를 중심으로 성행한 명태잡이가 1930년대부터 위기를 맞은 건 일본 식민자본 때문이었다. 이들은 저인망 방식의 트롤 어선을 도입해 어획량을 파격적으로 늘려갔다.
당연히 재래 방식의 조선 어부들이 당해낼 수가 없었다. 조선인 어부들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무릅쓰고 파업을 하기도 했다. 트롤 어선을 이용한 무차별 남획은 한반도에서 명태의 씨를 말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식민자본의 폭력성이 생태계 파괴로 귀결된 대표적인 사례다.
어두운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현재 부산과 시모노세키항을 오가며 생선을 실어 나르는 활어차에서 양국의 미래를 본다. ‘곰장어는 역시 부산의 뒷골목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곁들이며 먹어야 제맛’이라는 문장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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