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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얘기’로 만들어진 문건… 신빙성 흔들

입력 | 2014-12-09 03:00:00

[‘정윤회 문건’ 파문]문건 작성경위 윤곽
조응천-박관천, 문건작성 배경 논란




검찰 수사결과 ‘정윤회 동향’ 문건이 관련자들의 ‘전언’에 상당 부분 의존해 작성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객관적인 검증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된 문건이 상부로 보고되고 언론에까지 유출된 이유가 청와대 내부 인사들의 권력 다툼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 ‘전언의 전언’ 듣고 보고서 작성

관련자들의 증언과 검찰 수사결과를 종합하면 ‘십상시(十常侍) 회동’을 담은 문건은 이렇게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박관천 경정(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지난해 12월 중순 직속상관이던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으로부터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교체설’의 진위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받고 평소 알고 지내던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십상시 회동’과 관련된 이야기를 제보받았다고 한다. 박 전 청장은 국세청 내에서 탈세 관련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세원정보과장을 거친 대표적인 ‘정보통’이다. 박 경정은 이전에도 박 전 청장에게서 정보를 전달받았는데 신뢰할 만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정윤회 씨 동향 관련 정보도 사실로 믿었다고 진술했다.

박 경정은 제보자인 박 전 청장이 전해준 정보의 출처가 김춘식 대통령국정기획비서관실 행정관이라고 지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청장이 자신의 대학(동국대) 후배인 김 행정관으로부터 “정 씨가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 등 청와대 관계자들과의 친분을 이어오고 있으며 김 행정관 본인은 모임에서 총무 역할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에게 알려줬다는 주장이다. 조 전 비서관은 이를 구두로 보고받고 박 경정에게 ‘문건으로 작성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박 경정은 평소 알고 지내던 기자 A 씨에게 해당 내용을 알려준 뒤 ‘나도 그런 얘기를 들었다’는 답변을 듣는 정도의 확인 절차를 거친 뒤 문건을 작성해 조 전 비서관에게 보고했다. 조 전 비서관은 “(박 경정이) ‘당시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으로부터 (문건 내용을) 들었다’고 보고했다”며 “문건의 신빙성이 6할(60%) 이상”이라고 주장했지만 정보의 출처는 회동의 참석자가 아니라 ‘전언의 전언’이었던 셈이다.

○ ‘3인방’ 견제하려 보고서 작성 지시?

이처럼 ‘전언’ 수준의 정보를 문건으로 작성하도록 박 경정에게 지시하고 김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조 전 비서관의 행동에는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통상 시중에 제기된 의혹에 대해 사정기관이 진상 파악에 나설 때에는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고 탐문을 거쳐 해당 보고서에 상세한 내용을 담는다. 특히 동향 보고서에는 대상 인물의 동선과 만난 사람의 신원 등이 객관적 근거와 육하원칙에 따라 기재된다. 필요한 경우 ‘조치 건의사항’도 포함된다. 그러나 ‘정윤회 동향’ 문건은 통상의 동향 보고서와 비교할 때 내용의 충실도 측면 등에서 많이 다르다는 게 사정기관 관계자들의 평가다.

조 전 비서관이 이처럼 폭발성이 강한 내용의 문건을 정밀한 검증 없이 보고한 배경에는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문건에는 김 실장과 3인방뿐 아니라 조 전 비서관과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청와대 행정관 B 씨 등이 거론된다. 이 때문에 ‘십상시 회동’과 관련된 정보의 신빙성이 정보의 취합 선택 과정에서 작성-보고 라인의 의도에 따라 재해석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 전 청장이 ‘십상시’ 멤버로 지목된 안봉근 비서관과 동향(경북 경산) 출신으로 친분을 이어왔다는 점 때문에 조 전 비서관이 박 경정 보고의 신빙성을 ‘확대 해석’했을 수 있다. 정 씨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사 다툼에 조 전 비서관이) 나를 옭아 넣으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검찰은 10일 정 씨를 소환 조사한 뒤 이번 주에 문건 진위 수사의 결과를 우선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인사 외압’ 연루 의혹까지 불거진 상황이라 ‘십상시’ 회동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건희 becom@donga.com·변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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