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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육을 하기에 미대생이 프로그래밍을 하나?
충남 논산의 건양대에 '꿈나무' 한그루가 있다. 이 나무에는 한국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할 '혁신 DNA'가 들어 있다. 나무를 심은 지는 갓 2년. 그러나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창의융합대학이다. 아이디어는 대학 설립자인 김희수 총장이 냈고, 실무는 삼성그룹에서 근무했던 최현수 학장이 총괄하고 있다. 최 학장은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등에서 전무로 재직하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업무 프로세스 변화를 설계한 '혁신통'이다. 건양대는 창의융합대학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신입생 전원에게 등록금의 50%의 장학금과 노트북을 지급하고 전용 강의실 등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창의융합대학을 이끌고 있는 최현수 학장. 삼성그룹에서 '혁신 전문가'로 불렸다. 그를 통해 삼성의 '혁신'이 대학에 들어가는 중이다. 최학장은 10년 뒤 나올 결과가 창의융합대학의 성패를 가름한다고 말하지만 '결과는 긍정적일 것' 이라는 뉘앙스로 들렸다. 건양대제공
창의융합대학 안에는 '융합 IT학부' '의약 바이오학부' '융합 디자인학부' '글로벌 프런티어스쿨' 등 4개 학부가 있다. 이름만 봐서는 유사성을 감지하기 어렵다. 최 학장은 4개 학부를 묶어 한 대학으로 만든 이유를 "학과별 전문성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걸 만들어 내려면 융합밖에 길이 없다"고 설명한다. IT와 디자인에 융합을 붙인 것도 IT와 디자인 분야에서의 융합뿐 아니라 상이한 학부와의 융합에 바탕을 둔 교육을 한다는 의미다. 글로벌 프런티어 스쿨은 해외시장개척과 글로벌 마케팅 등 대외통상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목표다. '의약 바이오학부'는 산업규모 3.5%에 불과한 국내바이오산업을 육성하려는 국가전략에 호응하고 김안과로 유명한 건양대의 의학 DNA를 따르기 위한 것. 4개 학부는 모두 2012년과 2013년에 만들어졌다. 학교 내에 있는 비슷한 학과를 제쳐두고 새로운 과를 만든 이유는 역시 혁신 때문이다. 기존 학과의 교육방법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아예 새로운 학과를 만든 것.
창의융합대학의 융합교육은 왜 기존의 교육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일까? 창의융합대학 1학년생들은 학부를 불문하고 16개 공통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이 안에는 8개의 리버럴아츠(문이과의 기초가 되는 학문) 과목과 8개의 각 학부 전공과목이 들어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일반화학 물리 생물학 창의수학 사회이해 등이 리버럴아츠 과목인데 학생들은 전공학위와 더불어 리버럴아츠 학위도 취득한다. 창의수학에 창의융합대학의 특징이 들어있다. 교재는 기존의 대학수학교재를 쓰지만 그 안에는 각 학부에서 요구하는 '응용 수학'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즉 IT 회로분석, 약물농도 측정, 경제 함수 등이 교재에 들어있다. 전공 전문성을 강화하는데 수학을 이용하는 것이다. 8개의 전공학부 과목에는 데이터통신, 컬러커뮤니케이션, 국제협력의 이해, 인체생명과학 등이 있는데 각 과목에는 다른 학부의 학문적 요구사항이 들어가 있다. 창의융합대학 교육과정은 '이과 학생이 디자인 과목을 듣고 미대 학생이 수학 화학을 들으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기자는 이게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최 학장의 말이다. "융합 디자인 학부 학생들은 울면서 수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다 따라온다. 1학년 창의수학 톱10안에 디자인 학부 학생이 4명이나 있다." 미술 전공자가 과연 수학을 할 수 있을까란 편견을 창의융합대학이 깨고 있는 것이다. 최 학장은 융합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무궁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공부만 했으니까 저런 건 못하겠지'란 선입견은 위험하다. 가르쳐 보면 고등학교 하위권 학생이 상위권 학생보다 더 잘하는 경우도 많다."
건양대 창의융합대학의 수업광경. '프로젝트 기반' 수업에 적합하도록 책상도 맞춰져 있다. '여러명의 생각을 모으다 보면 새로운 게' 나오고 이게 창의적일 수 있다는 모토가 대학의 교육방법에 깔려있다. 건양대 제공
팀원들과 토론했다. 융합 IT과목에 흥미가 있음을 알았다. IT와 디자인이 융합된 직업을 원한다. 디자인 할 때 이런 경험들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이 씨의 말처럼 창의융합대학 수업의 특징은 '팀 단위 프로젝트 수행'이다.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다 보면 새로운 걸 찾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 팀제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 팀은 5명 내외로 구성하며 강의실에서 배운 것을 실습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든다. '데이터 통신' 과목의 경우 엠텔러 연구소장인 이석주 상무가 '근접통신'에 대해 가르쳤고 최정규 대우정보통신 연구원이 '데이터통신 프로토콜'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다.
이 씨가 융합 IT과목과 화학 물리 등 이과 강의를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었던 데는 선행학습인 '플립러닝(FLIPPED LEARNING)' 때문이다. 창의융합대학의 모든 강좌는 플립러닝 방식을 채택한다. 선행학습은 대개 하루 2시간 공부할 분량으로 짜여 있고, 수업 2주전 학생들에게 자료를 배포한다. 학생들은 받은 자료로 공부를 한 후 강의에 들어간다. 미리 공부를 한 덕에 처음 듣는 강의라도 이해도가 높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이해도를 과제와 토론을 통해 체크한 후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보충설명을 한다. 첫 강의에 평가를 하고 그것을 바로 성적에 반영하는 교수도 있어서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전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레지덴셜 칼리지'를 운영하는 것도 학생들에게 더 많은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매일 밤 11시까지 해야 될 분량의 과제를 내주는데 이를 차질 없이 하려면 기숙사 생활이 필요하다고 본 것.
창의융합대학에서는 개설되는 강좌를 '모듈'이라 부른다. '모듈' 담당 교수를 '코디네이터 교수'라 하고 모듈 내에서 강의하는 교수를 '프로그램 교수'라고 한다. 한 모듈에는 15개의 프로그램들이 있고 '프로그램 교수' 1인당 3~5개의 프로그램을 담당한다. 즉 과목당 3~5명의 교수가 투입된다. 모듈 안에 프로그램을 두는 이유는 '현장 연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모듈의 기업연계는 1학년 과목의 경우 50%, 2학년 70%, 3학년 80%를 권장한다. 3학년의 경우 거의 모든 강의를 기업의 전문가에게 배우는 셈이다.
모듈 개설과 프로그램들은 '학생중심 수업설계', '수업담당자 선정적합', '학습 피드백 계획 적절성' 등 10개 항목을 '교육품질위원회' 등의 검토와 전체교수들의 리허설을 통과해야만 현실화된다. '4주 1학기' '플립러닝' '모듈식 교육'은 '공부하는 교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전공 교수들은 한 달에 한 번 모듈 개설과 프로그램 설계를 하고 2주에 한 번 '플립러닝' 교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교수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창의융합대학의 4개 학부가 기존의 학과를 이용하지 않고 신설로 방향을 잡은 것도 교수의 연구능력과 열정이 교육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 학장은 전임교원 충원도 "학위보다는 역량"이라고 말한다.
창의융합대학의 시험은 전부 '무감독' 이다. 학생들이 시험에 앞서 정직하게 시험을 본다는 의미로 '명예서약'을 하고 있다. 건양대제공
최 학장은 수능 고득점자가 꼭 창의적이지는 않다는 걸 안다. 그래서 획일적인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기위한 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이 '갇혀진 틀을 벗어나도록' 노력하고 있다. 틀만 벗겨주면 성취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창의융합대학 2014학년도 신입생 입학성적은 3개영역 백분위가 202.9로 높진 않지만 강도 높은 교육에도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나오지 않았다. 결코 공부를 잘했다고 볼 수 없는 학생들이 문이과는 물론이고 예술분야까지 넘나들며 융합 학제를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창의융합대학은 2015학년도 정시모집에서 문이과 공통지원을 허용해 또 한번의 실험에 나선다.
논산=이종승 콘텐츠 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