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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교육처럼… ‘정치 신뢰’ 심는 네덜란드

입력 | 2014-11-27 03:00:00

[국가대혁신 ‘골든타임’ 2부]<4>답답한 정치, 제대로 바꾸자
(下)선진국 시민교육의 힘




네덜란드 브레다에서 차를 타고 80km를 달려 헤이그까지 온 여고생 20여 명이 웃으며 물건을 골랐다. 샴푸 세제 치약 등이 각자 손에 들린 장바구니 속으로 들어갔다. 각 물품에는 파란색 빨간색 녹색 띠가 둘러져 있었다.

“마트 아니에요” 9월 17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정치교육 기관 프로데모스의 체험장에서 고교생들이 물건을 고르며 자신의 정치 성향을 알아보고 있다. 생활용품에는 정책별로 다른 답변을 고를 수 있게 여러 색 띠지가 둘러져 있고 고른 물건을 바코드에 찍으면 정치 성향이 비슷한 정당을 찾아주는 방식이다. 네덜란드 초중고교생 절반 정도가 이곳을 다녀갔다. 헤이그=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여느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이곳은 실제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빈 세제통에는 “정부의 세금 인상을 지지하면 빨간색을 고르세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이들이 고른 물품의 바코드를 모두 찍자 “당신의 정치적 성향은 ○○당과 가깝습니다”라고 적힌 영수증이 출력됐다. 9월 17일 오후에 찾아간 네덜란드의 정치교육 기관 프로데모스 체험장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기자가 둘러본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등 3개국은 정치적 시민교육 기반이 탄탄한 나라로 손꼽힌다. 이들 국가에는 어려서부터 체험하는 정치 교육이 사회 전반의 ‘신뢰 자본’을 쌓고 민주주의를 탄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존재한다. 정부도 정치 교육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고 관련 기관에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 어릴 때부터 지지 정당 알려줘

네덜란드의 대표적 정치 교육 기관인 프로데모스는 헤이그의 네덜란드 의회 바로 맞은편에 있다. 1907년 이준 열사가 끝내 참석하지 못한 채 분루를 삼킨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그 장소 옆이다.

프로데모스의 가장 큰 목표는 참여한 학생들이 국가 시스템과 민주주의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역할과 기능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직접 의사결정 과정을 체험해 봄으로써 생각이 다른 상대방과 타협하는 방법을 찾게 만든다.

프로데모스와 독일 연방정치교육원은 각각 ‘스템베이저르’와 ‘발오마트’라는 정치 성향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웹사이트에 접속한 뒤 각 정당이 마련한 15∼20개 질문에 ‘예’ ‘아니요’ 등으로 의사를 표시하면 자신의 가치관이 어느 정당과 가까운지를 알려준다. 스템베이저르는 선거 전 6∼8주 동안 홈페이지에서 진행되는데 네덜란드에서 전국 단위 선거가 실시되면 평균 약 400만 명의 청소년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올 9월 실시된 독일 브란덴부르크와 튀링겐 주 지방의회 선거 때에도 약 10만 명의 청소년이 발오마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 국가가 정치교재 값싸게 공급


독일 베를린 크라우젠 거리에 있는 독일 연방정치교육원 홍보센터는 서점 기능도 한다. 유명 철학자와 경제학자의 저서, 세계의 역사 및 문화를 다룬 책 등 다양한 책들이 서가에 꽂혀 있다. 대부분의 책은 무료다. 유료라도 권당 1∼3유로 수준이다. 수익성을 보장하기 힘든 철학 서적이나 고전도 싼값에 출판한다. 다양한 정치적 관점을 키우는 교재를 발간하는 일도 지원기관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고교생인 엘레아 드리브스 양(18·프리덴스부르크고 3학년)은 “유럽연합과 남미의 역사에 관한 책을 6권 골랐는데 모두 무료다. 좋은 내용의 책을 무료나 싼값에 구할 수 있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독일 연방정치교육원은 연 2∼4회 회당 30만∼100만 부씩 대학생과 청소년을 위한 정치 교육 잡지를 발간하며 이 잡지는 중고교에서 사회과 토론수업 부교재로 쓰인다. 교사가 신청하면 학교로 무료로 보내준다. 네덜란드의 프로데모스도 선거 때마다 3500(지방선거)∼2만 부(전국단위 선거)의 어린이 신문을 발행해 학생들이 선거를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 지속적 교육이 신뢰 낳아

정치 교육의 가장 큰 결실은 ‘신뢰’다. 정치 교육이 발달한 유럽 주요국에선 특정 사안이 자신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다. 또 투표 참여율이 80%에 육박해 선거 때마다 유권자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국민 상당수가 학교를 다닐 때부터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에 익숙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스웨덴 시민교육위원회는 전국 28만여 개의 학습동아리와 25만여 개의 문화 프로그램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참가하는 총인원은 약 1600만 명. 스웨덴 인구 970만 명의 1.6배에 이른다. 브리텐 몬손발린 위원장은 “스포츠 모임에 참가하더라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에 대해 토론하고 관계를 넓힌다. 이런 과정이 개인과 사회를 동시에 강하게 한다”고 말했다.

스톡홀름·베를린·헤이그=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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