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 1000만시대 “예방이 최선이다” <中> “모든 정책에 건강을”
《 자신이 암 판정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암에 걸린 것은 개인의 책임일까. 사회의 책임일까. 대부분은 ‘개인’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만성질환은 국가의 예방전략 실패로 생긴 산물이며 따라서 사회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대상이라고 본다.
실제로 WHO는 심혈관질환의 경우 전체 발생건수의 80%는 국가가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서울의 한 둘레길에서 펼쳐진 걷기 대회 장면. 도시를 리모델링하거나 새로운 도심을 만들 때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모든 정책에 건강을’이라는 개념이 전 세계 보건학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일보DB
○ 국민건강 위해 산업구조까지 바꿔
‘모든 정책 안에 건강을’이라는 슬로건을 가장 선도적으로 도입한 나라는 핀란드다. 복지의 천국으로 알려진 핀란드는 1960년대까지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률이 유럽에서 가장 높았다. 북유럽의 흐리고 추운 날씨 탓에 채소 경작이 부진하고, 국민들의 활동량이 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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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핀란드의 낙농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점이다. 핀란드 정부는 낙농업 가정에 베리작물(딸기, 크랜베리 등) 재배 농가로 전환할 경우 비용을 지원했다. 국민들에게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공급하면서 농업 후퇴까지 막는 ‘일석이조’의 정책이었다.
핀란드는 노스카렐리아 프로젝트를 끈질기게 추진한 결과 1970년대 초 인구 10만 명당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약 500명이었지만 2010년에는 이 수치가 10분의 1로 줄었다.
황인경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예방의학)는 “한국은 경제논리가 국민건강보다 우선 되는 경우가 많다”며 “국민의 건강을 위해 산업구조까지 바꾼 핀란드의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 신도시 설계 단계부터 시민 건강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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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건강도시 개념이 보급되고 있다. 서울 노원구는 2010년 서울지역 자치구 중 심정지 환자 발생이 248건(13건 생존)으로 가장 높게 나오자 소방서, 일선 응급의료기관, 교육기관, 경찰서 등과 네트워크를 구성해 시민 교육훈련을 강화했다. 그 결과 지난해 환자 수(287건)는 늘었지만 생존건수(35건)가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김건엽 경북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국내 건강도시 프로젝트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모든 정책 안에 건강을’이라는 전 세계적인 추세를 받아들여 ‘예방의학’에 대한 인식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