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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조진서]사회학과의 앱 개발 과제

입력 | 2014-10-31 03:00:00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얼마 전 인터넷에서 ‘사회학과의 앱 개발 과제’라는 글이 화제가 됐다. 한 명문대 사회학과에서 전공과목 교수가 3학년 학생들에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제작해 오라는 과제를 냈다. 전공과 별 관련이 없는 프로그래밍 과제가 나간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단다. ‘앱이 히트를 치기 위해서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므로 사회학과 학생들도 잘할 수 있다. 젊은 학생들이라면 (프로그래밍은) 쉽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순식간에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졌다.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대학생들이 주로 단 것으로 보이는 댓글들은 비판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정보기술(IT) 지식이 없는 노교수가 프로그래밍이 쉬운 건줄 아나 보다’ ‘한 달 만에 아랍어를 독학해서 책을 한 권 써오라는 것과 같다’ ‘대학들이 취업률에 목을 매다 보니 교수마저도 인문사회학을 무시하고 있다’ 등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처음 글을 올렸던 사람이 해명했다. 해당 교수는 앱의 완성품이 아니라 제작하는 과정으로 평가하려 했다는 말이었다.

해프닝은 그렇게 일단락됐지만 씁쓸한 여운이 남았다. 이게 그렇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될 일인가 싶어서다. 자신도 잘 모르는 스마트폰 앱 제작을 과제로 내준 교수도 무리수를 두긴 했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더 실망스러웠다. 기업들이 인문계 졸업생을 점점 홀대하는 이유가 이런 수동적 태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래밍이 어렵다는 건 기자도 잘 안다. 그러나 하는 데까지 해보고 실패하는 것과, 시도도 해보기 전에 ‘왜 내가 모르는 걸 시키냐’고 시킨 사람을 비난하는 건 다르다. 요즘 고등학교에선 인문학이 좋아서가 아니라 수학에 자신이 없어서 문과를 택하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이런 도피형 문과생들은 대학에 가서도 자신 없는 일은 도전하기보단 피하려는 습관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많은 대기업이 마케팅이나 영업처럼 전통적으로 인문사회계를 뽑던 직군에서도 이공계 신입사원의 비율을 높이고 있다. 현대의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논리적, 수리적 사고력과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춘 사람이다. 그런데 인문계 신입사원을 뽑아서 이공계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이공계 사원을 뽑아서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주는 편이 쉽다는 기업인이 많다.

취업률 향상을 위해 인문계 학생들에게 이공계 교육을 강요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인문학은 인문학만의 가치가 있다. 기업에서도, 사회에서도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인문학 전공자들의 경쟁력이 빛을 발한다. 기업 최고경영자와 고위직 공무원 등 이른바 ‘사회 지도층’에는 여전히 인문계 출신이 월등히 많다. 하지만 당장 취업이 급한 대학생들에게 그것은 먼 미래의 얘기다. 학생들은 인문사회학과에서 배우는 지식만으론 1차 취업시장을 뚫기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앱 프로그래밍이든 아랍어든 간에 필요하면 낯선 분야에 쫄지 말고 도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명문대 졸업장으로 취업이 해결되던 시대는 갔고 다시 오지도 않을 것이다.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cj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