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500명 희생된 마터호른 봉
마터호른 초등 150주년(내년 7월 14일 오후 1시40분) 카운트다운 시계 기념물. 체르마트 역마당이다.
형제간에 우애를 강조하는 건 형제간엔 우애가 싹트지 않아서다. 가까운 나라치고 싸우지 않는 나라가 없는 건 같은 이유다. 이 봉우리를 놓고 벌어진 두 나라의 갈등. 그건 이탈리아의 질투에서 비롯됐을 게 뻔하다. 그리고 그 한중간에 에드워드 윔퍼라는 영국인 삽화가가 있었다. 그는 한 출판사로부터 이 봉우리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여길 찾는다. 그러다 등정을 시도하는데 무려 일곱 번이나 실패한다. 그러다 7전8기만에 성공하는데 그게 1865년 7월 14일 오후 1시40분이다.
그해 이탈리아는 몬테체르비노 초등을 국가사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윔퍼를 따돌리고 몰래 등정대를 출발시켰다. 아울러 윔퍼의 등정을 봉쇄하느라 봉우리 양편 두 나라 마을의 모든 산악가이드를 매수했다. 그게 등정대 출발 직후 이탈리아 마을을 찾은 윔퍼에게 간파됐다. 윔퍼는 테오둘 고개 너머 체르마트로 달려왔고 주민을 가이드로 세워 추격했다. 그리고 마침내 북쪽 새 루트로 최초 등정에 성공한다. 이게 체르마트가 산악관광지로 각광 받게 된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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