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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형오]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개헌인가… 중심은 국민이어야 한다

입력 | 2014-10-23 03:00:00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장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개헌 발언 후폭풍이 거셉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1987년 이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습니다. 개헌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지만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인 18대 국회 전반기에 국회의장으로서 여야 학계 전문가를 망라한 개헌자문위원회(위원장 김종인)를 구성하고 종합보고서까지 냈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개헌의 방향과 내용을 짚는 특별 기고를 보내왔습니다. 국가적 중대 사안인 개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함께 공유해볼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


권력 비대화가 부른 비극

느닷없는(?) 개헌론이 불거졌다. 이번엔 이원정부론이다.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은 외교 안보 등 외치를 맡고, 국회에서 뽑는 총리가 내정을 이끌자는 것이다. 즉각 찬반양론이 나왔다. 정작 발언 당사자는 하루 만에 ‘꼬랑지’를 내렸지만 냄새는 계속 풍긴다. 여야와 언론 모두 들끓었다. 이래서 대통령이 “개헌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 했는가. 청와대는 뒤늦게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개헌에 쐐기를 박는 면박성 발언을 함으로써 오히려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악수(惡手)를 두었다.

개헌의 핵심은 당연히 권력 구조다. 그러나 권력의 제도적 배분과 조정보다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잡을 것인가에 더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때 아닌 ‘권력 갈등’으로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 모두 스타일을 구긴 이번 해프닝은 어쩌면 소통 단절, 배려심 부족 때문이겠지만 이런 점도 개헌을 쉽지 않게 하는 요인이다.

현행 헌법 유지론자들은 운영을 잘못해서지 헌법 탓이 아니라고 한다. 또 지금처럼 사회 갈등이 심하고 리더십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개헌론은 자칫 국론 분열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뼈아픈 지적이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자. 그동안 우리는 ‘5년 단임제 직선 대통령’을 여섯 번이나 뽑았지만 전임 대통령 다섯 분이 모두 말로가 좋지 않았다. 대통령 본인 아니면 혈육이 곤욕을 치렀다. 우연의 일치일까. 나는 헌법상 견제 장치가 허약한 상태에서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권력 비대화’가 부른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내가 하면 다르다’고 생각했겠지만 결과는 하나같이 실패였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보장하는 한 일방통행과 극한 대립, 조기 레임덕과 측근 비리는 막을 수 없다. 이런데도 그 원인과 책임을 제도가 아닌 운영 탓으로 돌린다면 너무 안이하다. 대통령의 불행은 국민의 불행이고 나라의 수치다. 언제까지 이런 논란 많은 제도 속에서 국민이 대통령의 안위를 걱정할 수는 없다.



2012년 지나갔고 2032년은 멀고

개헌의 가장 큰 장벽은 아이러니하게도 헌법 조항에 있다. 내각제든, 이원정부제든, 4년 중임제든 어떤 개헌을 추진하더라도 헌법은 현재의 국회의원(4년), 대통령(5년) 임기를 늘리거나 줄일 수 없도록 명시해 놓았다. 현직 대통령 재출마 역시 불가능하다.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하다.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있는 ‘20년 주기설’이 개헌의 키포인트인 것이다. 그 절호의 기회였던 2012년은 안타깝게도 지나갔고 2032년은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진다.

개헌은 나라와 국민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당리당략이나 정치적 계산에 휘말려선 안 된다. 차기 대선을 앞둔 임기 후반보다는 누가 청와대 주인이 될지 모르는 임기 전반에 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권이 바뀐 다음 곧바로 새 국회가 들어섰던 2008년이 개헌의 적기였다. 우리는 아쉽게도 당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단견으로 2012년 새 헌법에 따라 국가 최고 지도자를 선출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마냥 2032년이 오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현행 헌법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약점들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의 치명적인 약점들

첫째, 앞에서 언급한 대통령 권한의 비정상화와 급격한 레임덕이다. 대통령은 행정권 전체를 장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입법권, 예산권, 공무원 감사권을 일부 또는 전부 갖고 있다. 그 밖에 많은 권한이 대통령에게 속한다. 어느 나라 대통령보다 막강한 권력이다. 그런 구조이기 때문에 집권 초반엔 ‘제왕적’이라 할 만큼 권한이 집중되지만 중반을 넘기기가 무섭게 권력 누수 현상이 밀려온다.

강력한 권한은 강렬한 저항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단임제의 맹점이다. 어느 나라도 이렇게까지 심각하진 않다. 벌써 여러 번 겪다 보니 여기에도 가속도의 법칙이 적용돼 레임덕은 점점 더 빨리 오고 또 길어진다. 국정 낭비가 치명적이다.

둘째,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불일치에 따른 엄청난 비용 지출이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보궐선거 등 거의 해마다 선거를 치러야 하고 그때마다 정치권은 선심성 공약과 극심한 선거 후유증에 시달린다. 경제적 비용에 심리적 정서적 문제까지 유발시키면서 불신과 갈등이 사회 전반에 퍼진다.

셋째, 국회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정부가 비대해지면서 입법권보다 행정권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 추세이지만 우리처럼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미약한 국회는 보기 드물다. 국정감사, 대정부 질의 정도가 전부이다. 권한이 없다 보니 책임도 없고, 이는 무능으로 이어진다.

헌법은 국회의원들에게 마음대로 발언할 권한을 주었으나 말에 대한 책임은 면해 주었다. 제도적 견제 장치가 약하고 경험도 부족하다 보니 행정부를 제어, 통제하지 못하고 발목 잡기나 허장성세로 끝나버린다. 미국을 본떠 행정부 견제 장치로 인사 청문회 제도를 일부 도입했지만 무성의한 청문회 운영으로 여론은 제도 자체에 회의적이다. 국회의 자업자득이다.



대화-타협 자체가 어려운 시스템

현행 헌법에서 파생된 문제점은 또 있다. 우선 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스스로 법을 어기는 심각한 문제가 관례처럼 굳어지고 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헌법상 예산안은 새 회계연도 개시 한 달 전인 12월 2일까지 처리해야 하지만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예산 심사 기일 60일 또한 마찬가지다. 1년 예산이 10조 원이던 때 만들어진 헌법으로 350조 원이 넘는 예산을 다루니 부실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주어진 60일조차 제대로 심의하지 않는다. 이러니 국회가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현행 헌법에는 이 밖에도 시대에 맞지 않거나 미비한 조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민주 항쟁 결과로 급속히 헌법을 개정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유신 헌법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부분도 있다. 헌법을 위반해도,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국회의원에게 책임을 묻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현행 헌법은 대화보다는 투쟁에 더 적합한 시스템이다. 대통령의 힘이 국회보다 훨씬 센 힘의 기울기 차이가 확연하다 보니 양쪽 다 진지한 대화와 타협의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힘 센 쪽은 대화를 시간 낭비로 여기고, 다른 쪽은 투쟁이 더 효과적이라 믿는다. 국회가 초반 2년은 대선 후유증으로, 후반 2년은 차기 대선 구도 선점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야만 당 지도부와 자기 지지층으로부터 인정받는다. 국민은 그런 편 가름 싸움에 염증을 느끼지만 의원들은 잘 싸워야만 미래가 보장되는 묘한 구조다.

모든 결함과 부작용을 헌법 탓으로만 돌릴 수 없지만 헌법을 고쳐 힘의 기울기를 조절하지 않는 한 하위 법률을 손본다 한들 한계는 분명하다.



개헌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

혹자는 헌법 전문부터 부칙까지 전면 개정을 주장하지만 이는 개헌을 하지 말자는 말과도 같다. 마찬가지로 헌법의 세부 내용은 가다듬지 않은 채 큰 틀, 즉 권력 구조만 바꾸는 개헌을 해서도 곤란하다.

개정될 헌법은 지방자치, 정보화 시대, 인권 등 21세기형으로 고쳐져야 한다. 아울러 국회와 대통령, 국회와 정부, 국민과 국회, 국민과 정부 관계를 올바르게 새로 설정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표피적 접근으로 권력 구조의 중심만 이동시킨다면 오히려 개악이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통령의 권한 비대화 조항들을 고스란히 둔 채 5년 단임제를 단순히 4년 중임제로 바꾼다면 그것은 ‘8년 단임제’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또 지금 논의되는 수준의 이원정부제나 의원내각제를 채택한다면 ‘그들만의 잔치’에 국민을 들러리로 세우게 되는 꼴이다. 껍데기만 번드레한 개헌으로는 어떤 권력 구조를 도입하고 어떤 개헌을 하든지 백약이 무효하다. 하드웨어를 받쳐주는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가 중요한 것이다.

내년은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유일하게 중요 선거가 없는 해이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고 당의 실세와 대권 주자들이 진솔하게 접근한다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개헌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여야 의원 다수가 개헌을 지지하는 이유 이면엔 국회 권력의 확대가 있다. 이는 의회 선진국들의 일반적인 경우이기도 하다. 추후 개헌이 된다면 한국 국회도 그만큼 권한이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국회가 변하지 않고 지금 같은 모습이라면 국민들이 그런 국회에 절대로 더 큰 권한을 줄 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위한 개헌이고 누구를 위한 개헌인가. 그 중심은 늘 국민이어야 한다. 논의부터 시행까지 국민의 공감과 동의와 신뢰를 얻어내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추진력과 추동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회가 지금부터라도 제 할 일을 하고 자기 살을 도려내고 분명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은 국회를 믿고 권한을 줄 것이다. 그때 비로소 개헌은 가능할 것이다.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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