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그리다/토비 레스터 지음·오숙은 옮김/320쪽·1만5000원·뿌리와 이파리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 원본에는 삽화가 없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자코모 안드레아 다 페라라의 ‘건축십서’ 필사본에 나오는 인체비례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과 거의 일치한다. 뿌리와 이파리 제공
하지만 그림의 제목이 ‘비트루비우스 인간’이란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미국 시사월간 애틀랜틱 객원기자인 저자(50)는 의학 수학 철학 미학 해부학 지리학을 가로지르며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이 그림의 족보를 추적해 댄 브라운의 소설처럼 폼 나면서도 흥미진진한 책으로 엮어냈다.
그림의 제목이 말해주듯 서양 건축서의 고전인 ‘건축십서’의 비트루비우스가 없었다면 다빈치의 그림도 없었다. 건축십서는 비트루비우스가 기원전 25년경 카이사르의 의붓아들인 아우구스투스에게 헌정한 로마 제국 건설용 지침서다. 그는 영원한 제국이 되려면 도시나 건물의 설계가 세계의 축소판인 인체의 비례를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신적인 원과 세속적인 정사각형 안에 인체를 꼭 맞게 그릴 수 있다고 했다.
그가 38세경 가로 34.29cm, 세로 24.45cm 종이에 그린 비례도는 1500년 전에 나온 건축십서의 내용과 놀랍도록 겹친다. 다빈치는 그림 옆쪽에 ‘사람이 두 팔을 벌린 폭은 키와 같다. 턱밑에서 정수리까지는 키의 8분의 1(8등신!)이며… 발 길이는 키의 7분의 1과 같고…’라고 썼다. 그가 언급한 22가지 치수 중 10가지가 건축십서 내용과 일치한다.
저자는 다빈치의 비례도에 대해 ‘황홀하면서도 덧없는 순간, 미술과 과학과 철학이 하나로 수렴되는 것처럼 보이던 순간을 포착한다’고 썼다. 저자 덕분에 미술과 과학과 철학이 만나는 ‘사상사의 결정적인 한순간’을 놓치지 않게 됐다. 원제는 ‘다빈치의 유령(Da Vinci’s Ghost)’.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