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12조 1항
법적 근거 없이 시민을 감금하고 체포하는 것은 인권 탄압에 해당한다. 1980년대 강제로 연행되는 대학생의 모습. 동아일보DB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독재 정부와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시민을 법적 근거 없이 감금하고, 강압적인 수사와 형식뿐인 재판을 거쳐 처벌함으로써 탄압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를 거쳐 탄생한 현행 헌법 제12조는 무려 7개의 조항을 두어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필요한 내용적·절차적 요건을 상세하게 규정했다. 제13조와 제27조에서도 국가의 형벌권을 정당화하는 헌법상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은 개인의 신체적 안전과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하므로 신체의 자유는 기본권 보장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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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범죄와 형벌을 정한 법률이 있더라도 법원의 재판과정을 통해 확인된 사실과 그에 따른 형의 선고가 있기 전에는 처벌할 수 없다. 피해자의 진술 등 증거자료에 비추어 범죄 사실이 명백히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독립적이고 신분이 보장된 법관의 판단으로 유죄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 헌법이 ‘적법한 절차’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검찰의 수사 결과나 기소 내용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수사기관이 벌인 수사의 결론일 뿐임을 유의하여야 한다. 이를 두고 마치 법원의 재판을 통해 확정된 사실로 오해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재판 절차의 한쪽 당사자인 검사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헌법 제27조 제4항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무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을 체포·구속하거나 범죄에 사용된 물건 등을 압수·수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때에는 반드시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물론 범죄 행위 중이거나 범행 직후 등 영장을 미리 발부받기 어려운 경우에는 사후의 영장 발부를 조건으로 누구든지 범죄자를 체포할 수 있는 예외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사전에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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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과정에서 영장에 의해 적법하게 체포된 경우라도 계속해서 신체를 구금할 필요가 있다면 구속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이때 법관은 검사가 제출한 서류나 자료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에 직면한 피의자를 직접 심문하여 증거를 없애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등 구속의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구속영장을 발부하여야 한다.
아무리 구속의 사유가 있더라도 아직 죄가 확정되지 않는 사람을 장기간 가두어 둘 수는 없다. 수사를 위해 구속영장으로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기간은 경찰에서 10일, 검찰에서 1회의 연장을 포함하여 20일, 최대 30일을 넘을 수 없다. 과거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피의자에 대해서는 20일을 연장하여 최대 50일까지도 구속할 수 있었으나, 헌법재판소는 신체의 자유와 무죄추정원칙을 위반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
인권 발전의 역사는 국가의 형벌권으로부터 시민의 신체의 자유가 어떻게 확보되고 보장되어 왔는지를 확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2012년 한국법률가대회에서 발표된 한 통계지표에 따르면 영국에서 대헌장이 탄생되어 8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임의연행으로부터의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신체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