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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야크와 함께하는 내 마음의 그곳]조석 한수원 사장의 전주∼김제 ‘아름다운 순례길 240km’

입력 | 2014-08-30 03:00:00

세상 먼지에 흐려진 초심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한국천주교 최초 순교터 전주전동성당 앞에 선 조석 사장. ‘아름다운 순례길(240km)’을 걷다보면 한평생 초심을 붙들고 살아간 분들의 발자취가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전주=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조석 한국수력원자력사장(57)의 취미는 ‘무작정 걷기’다. 매일 아침마다 집 주변의 서울대공원이나 양재천을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 가끔 한강을 따라 걷기도 한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절대 볼 수 없는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겹고 새롭다. 그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시간뿐이다. 얼마 전 얻은 외손녀는 빠지지 않는 단골 화제다. 제주 올레길은 이미 마쳤고, 스페인 산티아고 길은 미완의 진행형이다. 덕분에 몸도 날씬한 편이다(174cm, 75kg).

조석은 지난해 ‘아름다운 순례길’을 9일 동안 걸었다. 그 길은 전주∼익산∼완주∼김제를 아우르는 240여 km에 이른다. 아내가 사흘 동안 과천에서 내려와 ‘찬조출연’으로 힘을 보탰다. 고마웠다. 순례길엔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유교 민족종교의 성지들이 수두룩하다. 9개 코스지만 순서는 마음가는 대로다.

“난 어느 사람이나 마음 한구석에 초심이랄까, 처음 시작할 때의 숫눈 같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막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있듯이 말이다. 험한 세상 부대끼며 살다보니 그걸 잠시 잊었거나 잊어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석과 같은 것이다. 먼지를 털어내면 여전히 반짝인다고 믿는다. 순례길을 걸으며 내 초심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더께먼지를 조금씩 닦아낼 수 있었다. 종교가 무엇이든, 그 길엔 한평생 초심 하나만을 붙들고 살다간 분들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윤지충(1759∼1791)의 피가 밴 전주전동성당,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1891∼1943)가 제자들과 함께 처음 선(禪)공부를 행한 원불교 만덕산 성지, 미륵의 땅 미륵의 나라 금산사, ㄱ자 한옥예배당 금산교회 두동교회, 후천개벽을 애타게 외쳤던 강증산(1871∼1909)의 구릿골약방,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느냐’고 일갈하던 조선 선비 정여립(1546∼1589)의 집터…. 나에게 그 길은 바로 반성의 길이요, 깨우침의 길이었다. 뜻을 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조석은 지난해 9월 한수원 사장으로 부임했다. 막상 책임을 맡으니 잠이 오질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한수원을 이끌고 갈 것인가. 그는 취임사에 ‘독이 든 성배’라는 말을 썼다. 그의 마음은 그만큼 절박하고 비장했다. 그는 ‘종갓집 맏며느리와 같은 마음으로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호소했다.

이순신 장군은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고 했는데, 한수원엔 ‘아직 수백 척의 배가 남아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납품비리, 원전안전, 조직문화라는 3대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그건 결코 사장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조석은 일찍이 그런 경험이 있었다. 2004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용지 선정 문제가 바로 그랬다. 용지 후보지 선정을 놓고 온 나라가 2년 동안 들끓었다. 급기야 부안에선 찬반양론을 놓고 연일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조석은 주무부처 원전사업기획단장이었다.

벼랑 끝에 홀로 서있는 심정이랄까.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주민투표를 도입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정책사상 처음이었다. 정부와 주민이 마주보는 게 아니라, 한 방향을 보는 것으로 프레임을 바꿔버린 것이다. 조석은 이 공로로 2006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한수원사장에 임명되고 몇 달 후(2013년 12월 16일) 내 이름이 졸지에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떴다. 누리꾼들의 폭풍검색으로 한때 한수원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였다. 난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왜 그러지? 알고 보니 웹툰 인기작가 동명이인 조석 씨(31) 때문이었다. 그가 인기리에 연재하던 ‘마음의 소리(791화)’에 ‘엄마한테 한수원에 취직했다’고 거짓말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것이다. ‘제발, 취직 좀 하라’는 성화에 못 이겨, 엄마가 절대 알지 못할 직업을 궁리하다가 원자력회사를 둘러댔고, 엄마는 TV에서 ‘한수원 사장에 조석 임명’이라는 뉴스를 보고, ‘어휴, 내 아들 장하구나!’ 한다. 이에 작가는 양심에 찔려 집밖에서(차마 얼굴을 마주볼 수 없어서) 전화로 엄마에게 만화가임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누리꾼들은 한수원 사장이 정말로 조석인지 궁금했고, 동명이인임을 확인하고 한바탕 웃었을 것이다. 인기만화가 덕분에 나까지 덩달아 꽃구름을 탔다. 그런데 난 여기서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원자력에 대해서 젊은이들과 주부들의 이해와 호감도가 가장 취약하다는 것이다. 웹툰 내용 중 ‘절대 알지 못할 직업’이라는 단어가 그 증거다. 그건 그동안 한수원이 그분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탓이다. 난 곧바로 젊은이들과 ‘CEO 토크콘서트’를 시작했다. 서울대 KAIST 포스텍 과천외고 등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놀라웠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마음을 열고 경청해줬다. 궁금한 것은 주저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뭔가 가르치려했던 내가 머쓱했다. 오히려 내가 너무 많이 배웠다.”

조석은 천주교 신자다. 유아영세를 받았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천주교 신자였다. 지난번 프란치스코 교황님 오셨을 땐 4식구(1남 1녀)가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서울시청 앞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교황님의 소박한 말씀이 감동적이었다. 잔잔한 울림이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았다.

조석은 6남매(4남 2녀)중 둘째 아들. 초중고교 시절 선생님 말씀 잘 듣는 학생이었다. 중 3때 딱 한번 ‘애들아, 우리 모두 숙제하지 말자’고 선동(?)했다가 이를 우연히 들으신 선생님으로부터 엉덩이 맞은 게 전부였다. 그때 남이 안 듣는다고 함부로 얘기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내(한 살 아래)도 대학 첫 미팅에서 만났다. 군대도 평범한 육군병장 출신.

아이들 교육도 ‘관심은 갖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자연스럽게 공부하고, 자유스럽게 판단하도록 놓아두는 게 으뜸이라고 생각했다. 학원도 거의 보내지 않았다. 본인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학원에 가겠다고 할 때만 허락했다. 대학입시는 아이가 선수이고, 엄마가 헤드 코치, 아빠는 감독이라고 여겼다. 감독이 너무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 웬만하면 옆에서 꾹 참고 지켜보는 게 좋다.

“스포츠에서 스타 출신은 명감독이 되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해서일 것이다. 나도 우리 직원들 눈엔 ‘잘난 스타 출신’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 회사엔 선수가 1만여 명이나 된다. 감독은 현장에서 선수들과 뒹굴어야 한다. 난 전국 수십 곳에 흩어져 있는 현장사원들을 즐겨 찾는다. 그들과 밥 먹고 이야기하고 인증 샷까지 한다. 부임 초기 어느 곳에 갔다가 ‘조석 사장님 방문을 환영합니다’란 문구가 전광판에 뜨는 것을 보고 질겁한 적 있다. 난 앞으로 그런 건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세상에,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데 ‘가장의 귀가를 환영합니다’라고 플래카드를 내거는 경우도 있는가. 우린 한 가족이다. 내가 ‘의전이나 그런 불필요한 일을 없애자’고 하면 그 자체가 또 일이 되는 경우도 있다. 참 어렵다. 하지만 끈질기게 쉼 없이 해야 한다. 다행히 조직문화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점점 반응이 온다. 국민들은 한수원을 믿고 싶은 거지 알고 싶은 게 아니다. 믿음은 전문지식을 설명한다고 무작정 쌓이는 게 아니다. 국민의 믿음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달려 있다.”  

▼ 여든즈음 아내와 공연 보기, 좋은 책 한권 쓰기, 동네축구 감독되기… ▼

조석의 소박한 버킷리스트


2011년 아내(왼쪽)와 산티아고 길 순례 모습. 조석 사장 제공

조석은 공 가지고 노는 것은 다 좋아한다. 둥근 것을 보면 그냥 굴리고 싶다. 탁구 당구 야구 축구 배구 농구…. 어릴 적 한때 운동선수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운동신경이 따라주지 않아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스포츠감독에 대한 꿈은 여전하다. 동네축구단 감독이라면 아직 희망이 있는 것 아닌가. 아니 어린이야구팀 감독이라면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저 생각만 해도 신나고 마음이 설렌다. 기술이야 좀 모자라겠지만, 그거야 전문 코치의 도움을 받으면 될 일이다.

“으쌰 으쌰 선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짜고, 그들과 뒹굴며 함께 웃고 울고…. 그런 과정들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난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빼어나게 잘하지는 못한다. 딱 남들과 적당히 어우러질 정도의 실력이랄까. 중학시절 종종 시내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는데, 그것은 버스비를 모아 탁구장에 가기 위해서였다. 얼마 전 회사 서울사무소에 빈터가 나서 탁구장을 만들었다. 그때 노조위원장과 기념으로 한판 겨뤘다. 잘 될 리가 없었다. 마음은 유남규 현정화인데, 몸은 천근만근 스텝이 자꾸만 꼬였다. 난 스포츠를 ‘처음 한번 미치면 도달하는 정도’까지 즐기는 스타일이다. 당구 200, 바둑 5급, 골프 보기플레이…. 보통 ‘한번 더 미쳐야 고수소리를 듣는다’는데 난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조석은 이루고 싶은 일이 많다. 한수원의 ‘비정상의 정상화’야 두말할 것도 없다. 그건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취임 1년 가까이 구원투수로서 급한 불은 껐지만,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한다. 스포츠는 몰라도 이것만은 열 번 백 번이라도 미칠 각오가 돼 있다. 그가 떠난 뒤, 한수원 가족들이 그를 ‘한수원을 사랑하고 온 몸을 바쳐 일했던 사람’으로 기억해준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다.

조석은 2011년 7월 아내와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 마침 오랜 공직생활을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어서 가능했다. 완주는 못했지만 15일 동안 총 350km쯤 걸었을까. 처음 며칠간은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첫 고비인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 그러구러 일주일쯤 지나자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강 같은 평화가 왔다.

“무념의 상태라고나 할까.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고나 할까. 걷다가 문득 ‘내가 지금 무심코 걸어가고 있구나’ 하고 깜짝깜짝 깨달을 때가 있다. 내려놓는다는 게 무엇인지 절실하게 깨우쳤던 귀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산티아고 길의 상징인 하얀 조개껍데기와 노란 화살표가 눈에 어른거린다. 언젠가 다시 가서 나머지 450km를 걸을 것이다.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돌기둥을 껴안고 묵상할 것이다. 그곳엔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

조석은 몇 년 전 우연히 뮤지컬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공연 DVD를 봤다. 그것은 2010년 10월 런던 초대형 콘서트장 O2(1만5000명 수용)의 공연실황이었다. 뜨거운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 왔다. 격조 있는 음악과 절제되고 세련된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다. 그때마다 목젖이 뜨뜻해졌다. 그리고 무릎을 쳤다.

“그렇다. 레미제라블 50주년 공연 땐 꼭 아내와 함께 런던에 가서 직접 보자. 난 결심했다. 물론 그때까지 공연이 계속될지 모르겠다. 또한 2035년이면 내 나이 일흔여덟이다. 건강해야 갈 수 있다. 눈을 감으면 귓가에 레미제라블 음악이 들린다.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리라는 자들의 목소리/그들의 심장 뛰는 소리가 북소리가 되어 울려 퍼질 때/이제 곧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테니/내일이 오면’(Do you Hear The people Sing?)”

조석은 책읽기를 좋아한다. 최소한 한 달에 5, 6권은 읽는다. 최근엔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강의’(리처드 뮬러 지음, 살림출판사)를 감명 깊게 읽었다. 지은이 뮬러 교수는 미국 의회에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연구결과를 통해 증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원자력에너지는 생각보다 안전하며, 대중이 이를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된 정보와 낯섦 때문’이라고도 했다.

“난 독서는 좋아하지만 아직 쓴 책은 한 권도 없다. 내 숙제다. 친구들이 가끔 농담 삼아 묻는다. ‘정말 책’을 쓸 거야? ‘그냥 책’을 쓸 거야? 그것부터 분명히 정해라! 친구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그 뜻을 잘 알고 있다. 난 정말 좋은 책 한 권 제대로 쓰고 싶다. 나름대로 자료도 모으고 준비도 하고 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인터내셔널페스티벌도 가보고 싶고, 가우디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둘러보고 싶다. 1882년부터 짓기 시작했다는데 아직도 공사 중이라니, 참 대단하다. ‘이순신 장군 전적지 둘러보기’는 늘 꿈꿔왔던 일이다. 그분의 삶은 톺아볼수록 매력덩어리요, 너무나 인간적이다. 가끔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가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듣는다. 난 예수가 하지 말라는 일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건 아마도 ‘사랑의 정신을 잃는 것’이 아닐까.”

▼조석 약력

♣학력 ▽1957년 전북 익산 함열 출생 ▽함열초(1∼3학년) 전주동초(4∼6학년) ▽전주동중 ▽전주고 ▽서울대 외교학과 ▽미국 미주리주립대 경제학 석사 ▽경희대 경제학 박사

♣경력 ▽행정고시 25회(1981) ▽통상산업부 미주통상과 서기관 공보과장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외교 안보 경제) ▽산업자원부 총무과장 ▽원전사업기획단장 ▽에너지정책기획관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정책관 ▽성장동력실장 ▽한국산업단지공단이사장 ▽지식경제부 2차관

♣상훈 홍조근정훈장(2006)

♠현재 한국수력원자력 7대 사장(2013.9.26∼)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