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0일 일요일 흐림. 탈선. #119 Ozzy Osbourne ‘Crazy Train’ (1980년)
9일 밤 서울월드컵경기장 특설무대에 선 오지 오즈번. 표정만 봐도 미친 사람 같다. 현대카드 제공
어젯밤 서울 상암동에서 영국 출신 록 가수 오지 오즈번(66·본명 존 마이클 오즈번) 콘서트를 처음 봤다. 헤비메탈의 조상 격인 영국 밴드 블랙 사바스의 보컬이 12년 만에 펼친 내한 무대. 날카로운 고음도, 으르렁대는 중저음도 아닌 어중간한 오즈번의 보컬을 원래 좋아하진 않았는데 그의 진가를 이번에 확인했다.
힙합 듀오 리쌍의 멤버 길이 내게 “녹음할 때 보컬에 카리스마를 부여하기 위해 화성을 미묘하게 중첩시킨다”는 자신의 비법을 귀띔했었는데 오즈번은 그런 게 아예 성대에 탑재돼 있는 듯했다. 그가 역할모델 삼은 오즈의 마법사처럼, 오즈번의 목 뒤에서 나온 보이지 않는 전선이 무대 뒤로 뻗쳐 비밀의 음향 기계와 연결이라도 돼 있는 듯. 조금만 건드려도 배음(倍音)을 토해낼 듯 팽팽한, 전기기타 줄 같은 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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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번은 ‘바크 앳 더 문’ ‘미스터 크롤리’ ‘아이 돈트 노’ 같은 솔로 대표 곡은 물론이고 블랙 사바스 시절 명곡 ‘페어리스 웨어 부츠’ ‘워 피그스’ ‘아이언 맨’ ‘파라노이드’까지 90분간 쏟아냈다.
공연 뒤 친한 형과 오즈번의 건재에 대해 얘기했다. 스물일곱 살에 무대 위에서 죽는 게 꿈이었지만 매일 비타민까지 챙겨먹으며 치열하게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해 함께 웃었다.
오즈번의 ‘크레이지 트레인’은 핵전쟁으로 인한 절멸의 공포가 대중을 지배한 냉전체제를 멈출 수 없는 기차에 빗댄 곡이다. 우린 어떤 공포의 끈에 의해 움직이고 있을까. 노란 길 밖에는 뭐가 있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