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밀란 쿤데라 지음·방미경 옮김/152쪽·1만3000원·민음사 밀란 쿤데라, 14년만의 신작장편… 4명의 친구를 둘러싼 45개 이야기
밀란 쿤데라는 14년 만에 펴낸 장편을 통해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문장은 간결하고, 인생에 대한 통찰은 깊다. 민음사 제공
6월 프랑스 파리 거리를 거닐던 알랭은 배꼽이 드러난 옷을 입은 여자들과 마주친다. 오늘날 아가씨들이 남자를 유혹하는 힘은 허벅지도 엉덩이도 가슴도 아닌, 배꼽에 집중돼 있다고 느낀다. 몸 한가운데 동그랗게 파인, 의미 없는 구멍에 말이다.
친구들은 함께 모여 스탈린과 칼리닌의 일화를 이야기한다. 스탈린의 농담을 역겨운 거짓말로 여기는 동지들 사이에서, 스탈린은 유일하게 칼리닌에게 정을 준다. 칼리닌은 전립샘 비대증 환자여서 연설 도중에도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한다. 스탈린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천천히 연설을 하고, 칼리닌이 자리를 뜰 수 없어 괴로워하다 결국은 바지에 실례하고 마는 상황을 즐긴다. 팬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괴로움을 견디고, 소변과 맞서 투쟁하는 인간적인 행위, 자신 외에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필사적인 투쟁을 격찬하는 것이다.
쿤데라는 사소하고 시시한 것에조차 의미를 부여하려는 우리 시대의 무거움을 응시한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