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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근로자 64만명도 1차대전 참전

입력 | 2014-07-28 03:00:00

[1차대전 발발 100주년]탄약운반 등 활약… 상당수 희생
우리는 파리회담에 대표단 파견




프랑스에서 포탄을 운반하던 중국인 전시 노동자들의 모습. 사진 출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인 중심의 전쟁이 아니었다. 중국인 수십만 명이 ‘중국인 노동부대(CLC·Chinese Labor Corps)’로 참전했다. 종전 후 일제강점 아래 한국은 민족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청나라가 망한 뒤 중화민국 대총통을 지낸 위안스카이(袁世凱)는 독일이 차지한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를 돌려받기 위해 1차 대전 초기 연합국 측에 5만 명가량의 군대 파견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하지만 연합국은 병력 손실이 커지자 중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중국인 노동부대 1698명은 1916년 8월 24일 톈진에서 프랑스 마르세유로 처음 출발했다. 1차 대전 동안 영국과 프랑스 등에 약 14만 명, 러시아에 50만 명가량이 각각 ‘전시 노동자’로 동원됐다. 중국은 1917년 10월 중립을 포기하고 정식으로 연합국 측에 가담했다.

중국인 전시 노동자들은 참호 파기나 탱크 수선, 탄약 운반 등 비전투 요원으로 활약했다.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 주둔한 영국군을 위해 물을 운반하다 상당수가 희생되기도 했다.

전선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희생자가 잇따랐다. 1917년 2월 17일 독일 잠수함이 프랑스 여객선 아토스호를 몰타 근처에서 침몰시켜 중국 노동자 400∼600명이 숨졌다. ‘전쟁 노역’에 동원된 중국인 중 러시아 서부전선에서만 3만 명가량이 사망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러시아 서부 전선까지 6000km가량의 이동 과정에서는 마치 가축이나 죄수 취급을 당했다고 당시 캐나다의 ‘핼리팩스헤럴드’ 신문은 전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1차 대전 당시 중국인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중국이 승전국이었는데도 전후 처리 과정에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반면에 일본이 칭다오를 손에 넣는 등 많은 이권을 가져간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고조된 ‘항일 분위기’와 관련돼 있다.

한국은 종전 후 독립 요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승전국 27개국 대표가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한 파리 강화회담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이는 같은 해 3·1운동과 1920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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