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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임우선]내 친구의 지갑

입력 | 2014-07-24 03:00:00


임우선 산업부 기자

“야, 최고의 재테크가 뭔지 알아? 안 쓰는 거야. 요즘 예금 금리 봐. 끽 해야 2, 3%야. 1000만 원 겨우 모아 통장에 1년 넣어도 이자가 20만 원, 30만 원밖에 안 된다고. 그거 따지느라 골치 아프게 금리 비교하지 말고 그냥 백화점에서 50만 원짜리 원피스 한 벌을 포기해. 결과적으로는 그게 최고로 돈 모으는 법이다.”

얼마 전 재테크 노하우를 두고 친구와 수다를 떨다 나온 얘기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무슨 돈 불릴 방법이 있나. 열심히 일해서 저축하면 10%대 이자를 주던 재형저축은 이미 멸종한 지 오래다. ‘1억 원으로 100억 원을 만들었다’는 부동산 신화 역시 부모님 세대에나 존재했던 ‘전설’이 돼 버렸다. 수익률이 20∼30%에 이르렀던 펀드 상품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 요즘 세대는 월급 말고는 기댈 곳이 없다.

이렇게 들어오는 구멍은 뻔한데 나갈 구멍은 많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주택 대출부터 차량 리스비까지…. 이것뿐이랴. 아이들은 커 가고 부모님은 늙어 가신다. 물론 젊은이 본인도 늙는다. 장차 앞으로 발생할 양육비와 교육비, 부모 부양비, 본인 노후자금 등을 생각하면 살짝 지갑을 열었다가도 소스라치게 놀라 ‘찰싹’ 지갑을 닫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 세대에게는 ‘평생직장’이란 개념조차 없다. 잘나가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 입에서조차 “내가 만약 40세에 잘리면…”이라는 가정하에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다. 외환위기가 모든 한국인에게 남긴 트라우마이자,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마음 놓고 소비를 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소비가 주는 즐거움을 압도하는 시대. 이것이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연간 맞벌이 소득이 1억 원이 넘는데도 내 친구가 악착같이 돈을 안 쓰는 이유다.

최근 한국 경제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내수 부진’은 한국인의 의식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이 불안감의 뿌리는 다시 한국 사회 및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된다. 고령화, 청년실업, 부서질 듯 연약한 복지제도, 높은 사교육비, 대기업 위주 경제구조, 그런 경제구조에서 최근 나타나는 대기업의 부진, 신성장동력 고갈 등….

이런 총체적 연결고리를 생각하지 않고 정부가 하나, 둘씩 내놓는 내수 활성화 대책이 시장에서 먹히지 않는 건 당연하다. 솔직히 정부도 몰랐을 리 없다. 안 먹힐 걸 알면서도 뭐라도 내놔야 했겠지만…. 어쨌든 이런 식의 단편적, 면피성 정책으로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2기 경제팀의 출범과 국가 개조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은 어쩌면 미래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지도에 없는 길도 가겠다’고 말한 최 부총리의 첫 항로가 오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발표된다. 최 부총리가 과연 내 친구의 지갑을 열 수 있을지 두고 볼 요량이다.

임우선 산업부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