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그런 소질이 있는지 지금까지 몰랐다는 게 마음 아팠어. 진작 알았다면 엄마의 삶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텐데….”
친구의 말처럼 나이 구십에 시작한 그림이 발군의 실력인들 이제 와서 어찌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다가 생을 마감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까지 가슴이 짠했다. 그렇다면 타고난 재능을 세상에 펼칠 기회가 있는 사람은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1920년생이니 거의 한 세기를 살았다. 일제강점기에 사진을 시작하여 광복의 기쁨을 찍었고, 1949년에는 경교장 뜰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마지막 사진이 된 하얀 두루마기 차림의 인물사진을 찍었다. 6·25전쟁을 종군 기록했으며 자유당 정권의 부패를 고발했고, 4·19혁명 때에는 경무대 앞 총알이 날아오는 현장을 기록했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났던 역사의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는 자체가 전설처럼 느껴졌다.
“꿈만 같아요. 남의 전시에 다니며 축사를 많이 했지만 정작 내가 이 나이에 전시를 연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이런 날이 오다니!”
1970년대 이전은 사진전이 드물던 시절이었고, 그 이후에는 카메라를 놓고 평론에 주력했으니 전시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 그런데 95세에 드디어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첫 전시가 성사되어 반세기도 더 지난 역사적 기록을 내보이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한 분은 “야구에서 9회 말 역전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짜릿하다”고 했다. 수없이 많은 야구경기에서도 그러한데,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9회 말 홈런은 얼마나 꿈같고 짜릿한가! 이래서 게임도 인생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