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노래/최명 지음/480쪽·1만5000원·선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술 마신 얘기라는 표현은 겸양에 불과하고 술이란 소재를 차용해 역사, 기행, 인간, 인생을 담은 인문학 에세이라는 걸 점점 깨닫게 된다. 그가 달아놓은 수백 개의 각주만 봐도 이 책이 단순한 잡문집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각주 또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술과 함께 호방했던 70대 노학자의 글은 삼국지연의 등 중국 고전과 한시, 외국 사상 등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고 수많은 등장인물은 어떻게 이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술은 물론이거니와 읽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도는 안주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는 데다 슬쩍슬쩍 눙치는 표현에 지루할 틈이 없다.
책 맨 끝에 붙인 ‘강북회 통신문’은 그의 고교 동창 모임을 위해 2008년에 쓴 글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는 역시 중국 역사를 종횡무진 누비다가 결국 김수환 추기경이 말한 ‘괜찮은 삶’으로 돌아온다.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하고 이웃과 화목할 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 알고 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걸 실천하는 것이 괜찮은 삶이 아닌가.’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