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그러나 위험천만한 도로였다. 폭이 좁은 데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절벽이 깎이고 가장자리가 유실되어 반대편으로는 계속 작은 산사태가 일어나 길 곳곳에 돌이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가다 혹여 떨어지는 돌에라도 맞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달려야 할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좁은 노폭에 굴곡이 너무 심해 운전자가 조금이라도 바다 구경에 한눈을 팔라치면 반대편에서 오는 차와 부딪히기 십상이었다. 오른쪽 왼쪽 급커브로 핸들을 돌릴 때마다 아이들은 멀미를 하곤 했다.
하지만 새로 깐 새까만 아스팔트는 햇빛 속에서 매끈한 윤기를 발하며 광채를 뿜고 있었고, 중앙선을 비롯한 각종 차선이 매끈한 곡선형으로 또렷이 그어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도로가 가파르게 휘돌아가는 것에 비례해 노면이 경사가 져 있었다. 한마디로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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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구간을 조금씩 쪼개어 공사하던 기억을 떠올림과 동시에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야광조끼와 장화를 신고, 차량 통제를 위한 수신호 깃발과 워키토키를 들고 있던 공사 요원들의 모습이 너무 진지하고 당당해 내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던 터였다.
차량을 통제하면서 외길 통행을 열어 주려고 차량 행렬의 맨 앞에 있는 사람과 후미 양쪽이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이쪽에서 차량 한 줄을 보내고 나면 저쪽에서 한 줄을 통과시키는 모습을 차 속에서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그들의 깃발 신호를 기다리는 그 15분 동안이야말로 그들이 그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그들 스스로 자신의 일을 잘 해내고 있다는 자신감과 긍지가 얼굴에서 빛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철저한 직업의식이 있었기에 거의 예술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1번 도로공사를 안전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고, 환골탈태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기간 외국 생활을 하고 돌아온 간호사 한 분으로부터 최근 이런 말을 들었다. “왜 한국의 병원에서는 모든 것이 의사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병원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환경미화원부터 간호사까지 각자 선 자리에서 자기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득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친 세월호 선장이 생각났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라야 일에 대한 책임감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이럴 때 그 사람은 직업의식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직종이 아닌데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동체는 어느 한 직업만 우수하다고 해서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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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