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모든 것’ 252쪽, ‘소년이 온다’ 216쪽, ‘살인자의 기억법’ 176쪽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한 여성 독자가 204쪽 분량의 경장편인 복거일의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를 읽고 있다(위 사진). 한국계 미국 작가 수잔 최의 장편 ‘요주의 인물’(607쪽·아래 사진 왼쪽)과 최근 한국의 경장편 소설을 비교하면 두께 차이가 뚜렷이 드러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출판계에서는 ‘살인자의 기억법’이 큰 인기를 끌면서 이후 얇은 장편이 부쩍 늘었다고 본다.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환산하면, ‘소년이 온다’는 700장, ‘살인자의 기억법’은 400장 분량이다.
예전에는 원고지 800∼1000장 분량의 원고를 한 권의 장편소설로 묶어 냈으나 이제는 원고지 600∼700장 정도를 ‘표준 원고량’으로 여기는 추세다. 보통 단편을 원고지 100장 내외, 중편을 200∼300장으로 보는데, ‘살인자의 기억법’이나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경우는 분량으로는 ‘긴 중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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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물리적인 ‘무게’가 가벼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영상매체의 득세와 스마트폰의 일상화, 경기 불황과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느긋하게 소설을 읽을 여유가 없어진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2013년 성인의 하루평균 독서 시간은 23.5분이며,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96분이다.
박신규 창비 문학출판부장은 “대하소설이 드물어졌듯이 사회문화적 변화에 따른 독자의 소구력과 관련이 있다”면서 “독자들이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가 구광렬 씨도 “분주한 시대에 누가 긴 소설을 읽을까 싶어서 작가 스스로 원고 분량을 조절하게 된다”고 했다.
문학 텍스트를 빠르게 소비하는 문단 시스템과 경험의 폭이 제한된 젊은 작가 세대의 서사력 저하도 ‘소설 다이어트’의 원인으로 꼽힌다. 웅진의 문학 임프린트 곰의 대표인 소설가 김도언은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에는 출판사들이 작가에게 장편을 써낼 충분한 시간을 줬다. 이제는 주요 문학 출판사가 스타 시스템의 일환으로 몇몇 작가를 빠른 시간 안에 순환시키면서 커리어를 관리한다. 웹진이나 카페에 장편 연재를 시키면서 그 빠른 호흡을 맞추다 보니 경량화되는 듯싶다.”
6·25전쟁과 1970∼80년대 현대사의 굴곡을 경험한 선배 작가들과 달리 젊은 작가들은 1990년대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았기에 경험의 폭에 한계가 있고, 그것이 서사를 풀어가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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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