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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책]바퀴벌레, 인간세상에 통쾌한 어퍼컷

입력 | 2014-05-31 03:00:00

◇샤워/정지원 지음·노인경 그림/215쪽·9500원·문학과지성사




바퀴벌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희귀한 소설로, 제10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이다. 멋진 노래 실력과 고운 심성을 가진 암컷 바퀴벌레 ‘아늑’. 하지만 남들보다 몸매가 뚱뚱하다는 이유로 ‘장수풍뎅이’ 같다는 놀림을 받는다. 짝짓기 축제에서도 이미 다섯 차례나 그 어떤 수컷으로부터도 청혼을 받지 못해 상심이 크다.

짝짓기 축제도 끝나고 텅 빈 욕실에서 제 처지를 한탄하는 노래를 부르던 아늑이 인간에게 잡힐 뻔한 순간, 어디선가 위험을 경고해 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수컷 바퀴벌레 ‘부드’. 부드 역시 인간이 욕실 샤워기를 교체할 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가 그만 갇혀버린 가련한 처지다.

아늑은 삶에 대해 냉소적인 부드가 마냥 편치만은 않지만 주눅 들어 있던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독설을 가장한 인생의 지혜를 들려주는 그를 다른 그 누구보다 가깝게 여긴다. 아늑이 부드에게 자신의 장기인 노래를 가르쳐 주고 시시콜콜 바깥세상의 얘기를 전하면서 둘은 속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살충제를 앞세운 인간의 습격에 생사의 기로에 놓인 아늑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부드를 샤워기 밖으로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고 끝을 알 수 없는 긴 모험을 떠난다.

혐오와 익살의 대상에서 ‘외모로 차별하는 세상에 당당히 맞서라’거나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교훈적 메시지를 끌어낸 발상이 돋보인다. 죽음 이후의 세계라든지, 진정한 우정의 조건처럼 읽는 이들의 생각을 붙잡는 이야기가 요소요소 배치돼 있다. 자칫 우스워 보일 수 있는 바퀴벌레의 의인화라는 설정도 인간 중심주의와 생명 경시를 향한 경고로 읽힌다.

차분한 톤의 감성적인 삽화도 책을 읽는 여운을 더한다. 바퀴벌레의 노래가 수시로 등장하는 건 작가가 애초 뮤지컬 제작을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이란다. 1920년대 스페인에선 나비를 사랑한 바퀴벌레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 관객들의 비웃음만 사고 대실패로 끝났다는데, 글쎄, 이 작품은 뮤지컬이 되어도 웃음보다 감동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