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계산대 앞에 유독 길게 늘어선 줄. 대개는 서투른 계산원 아줌마나 바코드 기계 작동 불량, 문제 있는 상품 탓이다. 하지만 그 밖의 변수가 하나 있다. 바로 여자 손님이다.
혼자 온 여자 손님이 많은 줄이 더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여자 손님의 계산이 부부 혹은 남자 손님에 비해 오래 걸린다는 얘기다.
눈썰미가 있다면 왜 그런지 쉽게 알 수 있다. 상당수의 여성이 지갑에서 카드를 찾아내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거의 똑같이 생긴 수많은 적립카드와 할인카드, 신용카드 중에서 마트용 카드를 골라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조금 더 살펴보면, 그들의 계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더욱 고차원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원천적으로 가방이 문제다. 가방에서 지갑을 찾아내는 것부터가 까다로운 일이다. 거의 모든 여자 가방은 남자의 그것과는 달리 수납공간의 구분이 없다. 한 공간에 다양한 물건이 들어가 뒤섞인다.
설상가상으로 별의별 물건이 다 들어간다. 지갑, 향수, 작은 빗, 립글로스, 볼펜, 화장품, 명함지갑, 껌, 휴대전화, 예비 배터리, 티슈, 손거울, 수첩, 열쇠고리, 비상용 머리끈, 눈썹칼, 선글라스, 교통카드 케이스, 이어폰, 핸드크림 두어 개, 네일 크림, 책 한 권, 생수, 커피 캔….
게다가 구석구석 숨어 있는 온갖 영수증들, 심지어 작년 겨울 코트에서 떨어진 단추까지. 대개는 그 주인조차 가방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 점에서 여자의 가방은 물건을 보관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셈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클로드 코프만은 가방을 ‘여자들에게 있어 제2의 집’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걱정과 준비성을 마트에서 계산할 때 다른 방식으로 발휘해 보면 어떨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카드 또는 현금을 미리 준비해 놓는 쪽으로 말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쪽으로 준비성을 보여주는 여성은 드물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