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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Hot 피플]中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입력 | 2014-05-12 03:00:00

300만원 들고 25조원 일군 ‘중국 청년의 神’




162cm의 단구에 별명은 ‘못난이 윈(처우롄윈·丑검雲)’, 대학 졸업 때까지 한 번도 ‘일류’의 문턱을 밟아 본 적이 없는 ‘루저(loser·패자)’형 남자. 그가 미국 월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마윈(馬雲·영어명 잭 마·50·사진) 중국 알리바바그룹 창업자 얘기다.

지난주 월가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미국 상장 신청 소식으로 들썩였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장을 승인하면 알리바바의 기업공개는 최대 250억 달러(약 25조6500억 원)를 끌어모으며 세계 최대 기록을 갈아 치울 것으로 전망된다.

1999년에 설립된 알리바바는 이용자 기준으로 아마존, 이베이, 페이팔을 능가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 왔다. 하지만 더 극적인 건 마 씨의 인생사다.

그는 1964년 저장(浙江) 성 항저우(杭州)에서 가난한 경극배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와 거리가 멀었다. 작은 몸집에도 싸움을 잘했다. 친구들을 위해 주먹을 쓰는 협객 기질도 보였다. 고등학교도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시험에 한 번 미끄러졌다. 대학은 삼수했다. 첫 번째 대입시험에서 받은 수학 성적은 1점(150점 만점), 두 번째는 19점이었다. 항저우사범학원 입학은 정원 미달로 얻은 행운이었다.

그는 지독한 수학 둔재였지만 영어에는 큰 흥미를 느꼈다. 1995년 초 통역회사 대표로 미국 땅을 처음 밟으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인터넷을 처음 보고는 본인과 세상을 바꿀 도구라는 걸 직감했다.

완벽한 ‘컴맹’이었던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인터넷에 본인의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3시간 만에 4건의 메일을 받았다. 그해 4월 친구 돈까지 포함해 2만 위안(약 329만 원)으로 정보기술(IT) 회사인 하이보(海博)네트워크를 차렸다. 홈페이지를 제작해주는 업체였다. 그는 당시 e메일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마 씨는 그 시절을 회고하며 “일류적 생각과 삼류적 집행력, 삼류적 생각과 일류적 집행력 중 하나의 조합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후자를 택한다”고 말한다. “좋은 전략과 관리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집행력”이라는 것이다.

마 씨는 1999년 기업 대 기업(B2B) 거래 회사인 알리바바를 세웠다. 본격적인 성공 가도는 2000년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2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면서부터였다. 2003년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淘寶)를 세운 그는 수수료 무료 등을 내걸고 과감한 공세를 벌였다. 중국 인터넷 쇼핑업계를 장악하고 있던 이베이는 타오바오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2006년 말 중국에서 철수했다. 중국의 후발 기업이 미국의 글로벌 강자를 단 3년 만에 완벽하게 꺾은 순간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마 씨는 타오바오 창립 10주년이었던 지난해 알리바바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사람들은 그의 은퇴를 예상했지만 마 씨는 그해 5월 물류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 대륙을 24시간 배송체제로 묶겠다는 것이다. 기존 물류회사와 연합해 설립한 회사는 ‘차이냐오(菜鳥)네트워크과기유한공사’. 차이냐오는 ‘초짜’라는 뜻이다. 알리바바 창립 때의 초심을 갖고 인생 2막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끝없는 도전과 창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공동체 정신을 보여준 그는 이제 사업가를 넘어서 중국 젊은이들의 사표(師表)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

1964년 10월 15일 저장 성 항저우 출생

1984년 삼수 끝에 항저우사범학원 영어과 입학

1999년 3월 알리바바 설립2003년 5월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淘寶) 설립

2013년 5월 알리바바그룹 최고경영자(CEO) 사임,

물류회사 차이냐오(菜鳥)네트워크과기유한공사 설립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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