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애니멀/조너선 갓셜 지음·노승영 옮김/293쪽·2만2000원·민음사 쾌락본능 자극하는 ‘神의 선물’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갖고 노는 ‘이야기의 동물’이다. “돌이 지날 때쯤 아이에게서 신기하고 마법 같은 것이 움튼다. 서너 살이 되면 활짝 피었다 일고여덟살이 되면 시들기 시작한다.” 흐뭇한가. 하지만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라. 길 잃어버리기, 도둑맞기, 물리기, 죽기, 달아나기, 떨어지기 같은 말썽과 혼란, 재난으로 가득하다. 이야기를 통해 힘겨운 삶을 예행연습하기 때문이다. 민음사 제공
미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09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은 하루 읽기에 할애하는 시간은 20분 남짓이지만 TV 화면과 영화 스크린 앞에서 1년에 1900시간, 하루 평균 5시간을 쓴다. 물론 그 시간이 모두 이야기에만 할애되는 것은 아니다. 뉴스, 다큐멘터리, 스포츠, 예능도 포함되니까.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이 분야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내러티브 리포트 없는 뉴스, 시청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낼 서사구조가 빠진 다큐, 영웅서사가 빠진 스포츠 중계, 캐릭터 설정이 빠진 예능을 찾기가 더 힘들지 않은가.
미식축구 경기장에 비행접시를 타고 나타난 외계인은 겁에 질려 바라보는 관중에게 절박하게 외친다. “코카인, 코카인 좀 줘.” 외계인이 우주를 가로지른 이유가 겨우 마약 때문이라고? 황당해하는 지구인에게 크렐인들은 설명한다. “우리는 지구인처럼 마약이 아니라 예술로서 코카인을 경험한다.” 지구인들이 반신반의하며 제공한 코카인에 잔뜩 취한 크렐인들은 그제야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들이 코카인을 하는 이유는 그저 “뿅 가기 위해서”라고.
이렇게 존 케슬의 단편소설 ‘침략자’를 인용한 저자는 이야기란 지루하고 가혹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마약이라고 단언한다. 예술과 윤리는 이런 쾌락본능을 고상하게 위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문은 계속된다. 우리는 왜 이야기에 쾌락을 느끼도록 진화했나. 여기에서 저자의 본색이 드러난다. 1990년대 들어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정서를 체험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의 뇌가 똑같이 반응하는 ‘거울뉴런 효과’라는 것이 발견됐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상태를 관객이 동일하게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야기는 결국 내가 체험하지 못한 수많은 상황을 진짜처럼 가상체험하게 함으로써 가혹한 삶의 조건에서 내 생존력을 암묵적으로 강화시켜 준다. 우리에게 이야기는 인간 사회 생활의 모의비행 장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래서 이야기에는 항상 ‘말썽’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기본 공식은 한 줄로 요약 가능하다. ‘이야기=인물+어려움(말썽)+탈출 시도’다. 이는 꿈의 구조와 똑같다. 우리는 ‘꿈결 같은 세상’을 꿈꾸지만 실제 꿈속의 우리는 천국이 아닌 지옥을 더 많이 경험한다.
이야기꾼으로서 저자의 재능은 이때부터 빛난다. 마약, 말썽, 지옥, 광기와 연결되던 이야기는 어느새 공감과 결속, 질서와 조화, 창조와 치유를 낳는 마술봉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진부함으로 가득 찬 이야기가 어떻게 참신한 이야기로 진화해 갈지에 대한 장밋빛 찬가로 이어진다. 이야기야말로 유한한 인간에게 준 신의 영원한 선물일지니.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