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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3년간 추적관찰?… ‘3박자’ 갖춘 치료센터 없인 공염불

입력 | 2014-05-02 03:00:00

[세월호 참사/‘안전 대한민국’ 이렇게 만들자]<5>피해자 가족 평생 돌보자




눈앞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지하 1층 매장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 학교가 끝나면 그곳에서 항상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95년 6월 29일. A 씨(26)의 인생은 그날 이후 엉망이 됐다.

어머니의 시신은커녕 유품조차 찾지 못했다. 사고 이전에 어머니와 이혼했던 아버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A 씨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싫었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버스 경적 같은 큰 소리가 나면 늘 가슴이 뛰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면 두려움이 몰려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건물이 무너지는 환영이 나타나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이 때문에 막노동판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제대로 된 심리치료는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군 입대를 했지만 심리 불안 판정이 나와 귀가 조치를 받기도 했다.

A 씨의 신체검사 재검 진료를 담당했던 한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충격을 받은 지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중증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S)이 심각한 수준이었다”며 “단 한 번이라도 심리치료를 받았다면 이렇게 심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장기 치료가 필수적인 PTSS

PTSS는 장기적인 치료가 필수적인 만성질환이다. 실제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07년 원목초등학교 소방교육 사고 등의 피해자들은 장기간 PTSS 증상을 보였다. 류인균 이화여대 약대 석좌교수 등이 대구지하철 참사 후 PTSS 증상을 보인 30명을 약 4년 동안 추적 관찰해 2011년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생존자의 77%가 1년 5개월 뒤 PTSS 판정을 받을 정도로 심리적 불안 상태를 보였다. 사고 발생 후 2년 8개월 후에도 생존자의 48%는 증상이 지속됐다. 12%는 4년 가까이 PTSS 증상을 보였다.

대구지하철 사고보다 피해 규모가 작고 비교적 심리지원이 잘됐던 2007년 서울 중랑구 원목초등학교 소방교육 사고 피해자들의 충격도 상당 기간 지속됐다. 당시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부모 3명이 고가 사다리 위에서 떨어졌고, 이 중 2명이 사망했다.

이 장면을 본 학생의 70%가 사고 직후 PTSS의 전 단계인 급성 스트레스 증상을 보였다. 학교 차원에서 다양한 심리치료가 이뤄졌지만 사고 6개월 후까지 목격자의 26.9%는 증세가 나아지지 않았다. 사고 30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PTSS로 판정할 정도의 환자는 없었지만 20%는 여전히 경증 불안 증세를 겪었다. 이런 대형사고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재난 사고 피해자에 대한 장기적인 심리치료 지원 시스템은 전무한 실정이다. 정신건강 관리에 대한 인식 부재 탓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PTSS 치료의 필요성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정부는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보건복지부는 피해자가 밀집 거주하는 경기 안산 지역에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센터’를 설치하고 최소 3년 동안 피해자를 추적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국가 차원에서 특정 사건에 대한 심리치료 지원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민간 기업이 낸 사고라도 불특정 다수가 피해를 볼 경우 국가가 끝까지 지원하는 게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 안산 트라우마 센터 공염불 우려

하지만 현재 시스템으로는 안산 트라우마 센터가 제 기능을 못할 거라는 우려가 높다. 여론에 떠밀려 ‘피해자 3년간 추적관찰’을 선언했지만 구체적인 지원 방향, 재원, 인력 구성 등 실행 방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안산 트라우마 센터가 치료 기능이 떨어지는 반쪽 센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센터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두 명이 상주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재난 사고 피해자를 위한 센터인 만큼 PTSS 등 불안 분야를 전공했거나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을 전공한 전문의를 각각 1명씩은 상주시켜야 한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안산에 상주하는 전문의를 채용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심리학을 전공한 심리치료사를 20명 정도 고용할 계획이지만 전문의 고용 없이는 전문 PTSS 치료가 이뤄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전문의가 고용되지 못할 경우 센터는 간단한 상담과 환자 관리 정도만 이뤄지는 심리상담소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속적인 예산 증액이 불확실한 것도 문제다. 현재 정부는 올해 예산 중 예비비에서 30억∼40억 원을 지원해 안산 센터를 운영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후 예산 지원은 불확실한 상태다.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재 예산으로는 향후 치료비 지원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여론의 관심이 수그러들면 현재의 계획은 껍데기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트라우마 센터 건립을 주도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도 장기 계획의 부재를 인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관련 정책을 수년간 연구한 뒤에 센터를 세워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의 공을 들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장기적인 피해자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식한 만큼 향후 센터를 내실 있게 꾸미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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