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차트 상위 다수 포진 “읽고 나면 남는 것 별로 없더라”… 기존 美-日-국내 처세술 책에 피로감 작년 인문학 서적 열풍과 결합… SNS 짧은글 문화와도 궁합 맞아
중국 명대의 화가 정운봉이 그린 삼교도(三敎圖). 공자, 석가, 노자를 함께 그린 그림이다. 최근 이들로 대표되는 중국 사상과 역사를 녹여낸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흐름출판 제공
“죽은 줄 알았다.”(공자)
“스승님이 계신데 제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안연)
최근 베스트셀러 1위가 된 자기계발서(‘말공부’)의 한 대목이다. 출판계에 따르면 이 책처럼 중국 저자가 직접 쓰거나 중국 고전을 소재로 한 자기계발서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 중국 자기계발서 급부상
판매량도 만만치 않다. 교보문고 진영균 브랜드관리팀 대리는 “중국 자기계발서는 일주일에 약 1000부, 누적 판매량은 2만, 3만 부 정도다”며 “대부분 2월 중순 이후 발간된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늑대의 도 여우의 도 인간의 도’ ‘오자서병법’ 같은 중국 자기계발서가 지난달을 기점으로 앞다퉈 출간되고 있다. 대형 서점에선 중국 자기계발서를 세트로 묶어서 판매하고 있다.
○ 중국 자기계발서 인기 왜?
자기계발서가 주요 베스트셀러가 된 시점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부터. 당시 ‘사오정’ ‘오륙도’란 말이 횡행하면서 ‘남보다 한 발 앞서 가라’는 서구식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선택’ ‘백만불짜리 습관’이 대표적인 예. 2000∼2007년 이와 유사한 책들이 베스트셀러 톱10의 60%가량을 차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서구식 자기계발서 인기가 감소했다. 신자유주의적 서구 모델의 한계가 드러난 상황에서 미국식 자기계발서는 사회 모순을 외면하고 개인의 변화만을 강조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탓이다. 2010, 2011년에는 고이케 류노스케의 ‘생각 버리기 연습’과 ‘화내지 않는 연습’ 같은 매뉴얼형의 일본 자기계발서가, 2012, 2013년에는 김난도 김미경 같은 국내 스타 강사를 앞세운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자기계발서들 역시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지적이 많아지면서 지난해 중순부터 인문서적 붐이 일었고, 중국 자기계발서 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출판계의 해석이다. 흐름출판의 김세원 편집장은 “중국 자기계발서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메시지와 성찰을 동시에 전달한다. 인문서적과 자기계발서가 합쳐진 형태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짧게 글을 쓰는 문화가 확산된 점도 중국 자기계발서의 인기를 키웠다”며 “스토리텔링을 갖춘 중국 고전만큼 SNS 글쓰기에 적합한 소재는 없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