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경제부 기자
실험의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시멜로에 손을 댄 아이들의 부족한 인내심에 혀를 끌끌 차게 된다. 겨우 15분을 참지 못해 마시멜로를 하나 더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다니….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15분 동안 손에 쥔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고통을 감수하는 데 대해 확실한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이 실험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15분을 기다렸는데도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의심이 생기는 순간 15분의 인내는 무가치한 일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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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월까지 17개월째 1%대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물가 흐름이나 잠재성장률 수준 등과 비교해도 이례적인 수준의 저물가다. 상황이 이런데도 설문조사를 통해 정부가 집중해야 할 정책과제를 물으면 국민의 십중팔구는 ‘물가 안정’이라고 답한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올 초 2014년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4.1%는 ‘서민생활 안정’을 일자리 창출(40.6%)보다 먼저 꼽았다. 어느 정도의 물가 상승을 인내하면 일자리 창출이라는 과실이 돌아오는 경제 선순환 구조의 신뢰가 깨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렇다고 정부나 통화당국이 국민 눈높이에 맞춰 물가만 틀어쥐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통화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한국은행은 최근 몇 년간 보인 금리 결정에 대해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금리를 움직여야 할 때를 놓쳐 경제에 부담을 줬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 외에 금융 안정, 경제 성장 등으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 신임 총재를 맞은 한은도 물가 상승 등의 고통을 참으면 더 큰 결실이 돌아올 것이라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