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어떻게 해서 해정이 해장으로 바뀌었을까. 정(酲)은 잘 쓰지 않는 어려운 한자다. 언중들이 그 뜻을 정확히 알기 힘들다. 그래서 ‘해장’이라고 잘못 발음했고 그게 굳어진 것이다. 해장국도 자연스레 원말 해정국을 밀어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글 표기가 바뀐 한자어도 많다. 금슬(琴瑟)은 ‘금실’로, 초생(初生)은 ‘초승’으로 바뀌었다. 기침을 달리 부르는 해소 역시 원말은 ‘해수(咳嗽)’다. 그러나 ‘병(病)’이 되면 달라진다. ‘기침을 심하게 하는 병’은 ‘해수병(咳嗽病)’이라 하지 ‘해소병’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해소는 사람들이 많이 써 어쩔 수 없이 표제어로 인정했지만 전문용어인 병명까지 ‘기침할 수(嗽)’를 ‘소’로 틀리게 읽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군색(窘塞)’은 ‘필요한 것이 없거나 모자라서 딱하고 옹색하다’ ‘자연스럽거나 떳떳하지 못하고 거북하다’ 등으로 풀이돼 있다. ‘궁색(窮塞)’은 ‘아주 가난하다’는 의미밖에 없다. 그러니 한 번이라도 사전을 들춰본 사람이라면 ‘변명’과 어울리는 낱말로 ‘군색’을 택해야 맞다.
하지만 언중의 선택은 사전과 달랐다. ‘군색한 변명’ 대신 ‘궁색한 변명’을 꾸준히 사용했다. ‘해정’과 마찬가지로 ‘군색’이라는 말이 낯설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침내 국립국어원 웹사전은 궁색에 ‘말이나 태도, 행동의 이유나 근거 따위가 부족하다’는 뜻풀이를 더해 언중의 입말을 반영했다. ‘변명’과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보니 ‘궁색한 변명’과 ‘대답이 궁색하다’를 예문으로 들었다.
변명을 궁색하게 하든, 군색하게 하든 그건 언중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변명거리를 애당초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다. 일당 5억 원의 ‘황제 노역’은 변명조차 할 수 없는, 그저 소가 웃을 일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