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주 기자
최근 대리로 승진하면서 월급이 30만 원가량 오른 여성 직장인 김모 씨(29)는 “승진 기념으로 명품가방을 하나 살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결국 오른 월급을 적금과 소득공제 장기펀드에 고스란히 담기로 했다.
요즘 김 씨와 같은 사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여윳돈은 있는데 도무지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면 돈을 허투루 쓸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저축률 통계도 이런 씁쓸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저축률은 4.5%로 1년 전보다 1.1%포인트 높아졌다. 2009년 이후 4년 만에 상승이다.
소비위축의 원인이 미래에 대한 불안에만 있는 건 아니다. 1, 2년 새 많게는 1억 원까지 오른 전세금, 줄지 않는 아이들 사교육비도 문제다. 최근 동창모임에서 만난 30대 중반의 친구는 “얼마 전 고등학교 비정규직 교사에서 정규직 교사가 됐지만 1000만 원 정도 오른 연소득이 모두 전세보증금 대출을 갚는 데 나갈 것 같다”며 신세 한탄을 했다. 모임에 참여한 친구들도 대부분 “월급이 늘어도 생활은 항상 팍팍하다”는 데 공감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빚이 있는 가구의 비중은 2010년 59.8%에서 지난해(3월 기준) 66.9%로 증가했다.
저축 증가는 보통 국가경제에 긍정적인 신호다. 시중에 예금이 많아지면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쉬워지고, 자본시장에서 외국인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 해외 변수가 생겨도 경기가 안정화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소득이 늘어도 소비는 위축되는 추세가 장기화되는 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기록적인 저물가가 이어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 소비를 자꾸 미루는 것이 디플레이션 우려를 갈수록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안 그래도 노년 빈곤층에 대한 신문기사를 요즘 자주 접하다 보니….” 명품가방을 포기한 김 씨의 선택이 엄살로만 들리지는 않는 이유다.
이원주 기자·경제부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