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남자를 말하다
남자들은 술 한잔을 앞에 놓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사진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심야식당 ‘이꼬이’의 내부모습. 이꼬이 제공
사랑. 이것보다 더 위대한 것이 또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사랑에 대한 소중함이 더 절실하다. 여인과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는 나르치스를 불쌍히 여기며 숨을 거둔 골드문트는 나의 밑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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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길 옆 오막살이. 새벽기차가 기적을 울리면 잠을 깬 부부가 머쓱하게 애나 만든다는 시절에 태어났으니 양적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씀이 가장 무서웠다. 태어나자마자 존재하고 있었던 김일성은 내가 중년 들어 김정일로 바뀌고, 50대 후반에는 손자 김정은까지 보고 있다. 운이 없으면 90대에는 김정은의 백두혈통 아들이 집권하는 것까지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뼈까지 스며든 반공교육이 나의 글로벌화를 방해하고 있다.
나에게 메릴 스트립은 미국에서 경기여고 나온 여자이다. 오랜 기간 섹시하고도 지성적이었다. 왜 그녀 같은 여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일까? 프라다를 입는 악마라도 좋다. 그런 여자와 하루 밤을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5만원 지폐 안의 신사임당은 말썽꾸러기 나를 꾸짖는 어머니 같지만 메릴이야 말로 나를 포근하게 안아줄 여자 같다. 학벌에 대한 초년 콤플렉스는 다 늙은 메릴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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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자들과의 수많은 관계가 나를 옭아맨다. 그래서 아직도 자유로움은 차라리 힘들 때가 많다. 사르트르가 말하지 않았나.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 그래도 나는 실존주의의 길로 내 삶을 정리할 것이다.
나는 대구가 낳은 이상화 시인을 무척 좋아한다. 나의 고향 대구가 보수꼴통의 동네라고? ‘나의 침실로’를 읽어보라.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대구는 은근히 혁명과 좌파의 도시다. 내 몸에 흐르는 피도 약간은 그렇다. 그래서 내게 사랑은 연민이며 애처로움이다. 애처로운 내가 되어 사랑 받고 싶다. 뻐기는 사랑은 나에게 없다.
나는 교수다. 수업시간에 학부 학생들에게는 경쟁력 강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직장에 가면 귀가 아프도록 들을 말을 어린 학생들에게 하기 싫다. 꿈을 꾸고 사랑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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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에게 있어 인생은 여행(journey)이다. 이 세상 이리 저리 다니고 구경하다 가면 된다. 이제 저 멀리 그 여행의 종착역이 보일락 말락 한다.
수험생이 되었다가 대학생이 되고 군인이 되었다. 미국도 가보고 회사도 다녀보았다. 아빠가 되고 교수가 되기도 하고 설악산에 오르기도 했다.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무엇이 그렇게 다른가? 무엇이 되어야만 계속 행복한가? 이루려하면 변하고, 도착했다 싶으면 다른 곳이 보인다.
그래도 무위(無爲)의 위력은 생각보다 크다. 상실감이 덜하고 그때그때 행복하기 때문이다. 늦은 밤 바(bar)의 재즈와 위스키 한잔에 여행자는 어깨뼈가 녹는다. 특히 사랑을 느낄 때는 행복의 극치를 이룬다. 난 내일도 떠난다.
글=Mr. Who
(3월 MAN의 Mr. Who는 인생의 낭만을 추구하는 서울의 한 대학 교수입니다.)